새로운 가족과의 생일

D-9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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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일이다. 어렸을 때는 생일이 방학인 것이 싫었다. 학교에 다니는 때라면 특별히 약속을 잡지 않아도 친구들에게 직접 축하받을 수 있는데. 방학인데다 1월이면 학년이 바뀌는 시기라 어수선했다. 이제는 더 이상 방학이 의미 없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 불만은 없어졌다. 생일이면 으레 출근하는 것이 조금 더 즐겁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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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일은 조금 특별하다면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필요한 물건도 없고, 남편과 함께 있으면 매일 행복하기 때문에 더 바라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무언가 특별한 걸 해주지 못한다는 게 아쉬운지 자꾸 뭘 해줄까 물었다. 그리고 회사에 가니 결혼하고 첫 생일인데 뭘 하는지 물었다. 뭘 하긴 퇴근하고 집에 가서 저녁 먹어요. 그렇다면 뭔가 특별한 걸 먹냐고 물었다. 요리는 제가 하기 때문에 특별한 거 아니고 그냥 매일 먹던 거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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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평소 같지 않게 업무시간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각각 전화가 왔다. 어머님은 당장에라도 집에 오셔서 미역국을 끓여주실 기세였다. 괜찮다고 여러 번 만류했지만 결국 어머님은 꽃과 케이크를 보내셨다. 오늘 같이 추운 날 이거 사서 보내시려고 밖을 돌아다녔을 어머님을 생각하니 살짝 마음이 안 좋다. 셀카를 잘 찍지 않지만 남편과 케이크를 놓고 셀카를 여러 장 찍어서 어머님께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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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할까.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온 것도 아닌데. 어쩌면 자신의 의지를 전혀 발휘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기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결혼기념일이 부부의 탄생이라 기념하는 것처럼 그저 탄생에 집착하는 걸지도 모른다. 무에서 유로 바뀌는 결정적 지점이기도 하니까. 오늘은 철원이 영하 28도로 남극보다 2도나 낮은 날이었다.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닥친 생일이라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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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는 동서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형님 생신 축하드려요,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내가 형님이라고 불리다니... '생신'이라는 표현을 듣다니... 그 지점에서 감회가 새롭긴 했다. 아빠는 남자 형제들만 있어서 나는 명절마다 엄마가 형님이라고 불리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들어왔다. 이제 내가 그런 호칭으로 누군가에게 불린다는 사실이 낯설고 새롭다. 또 한편으로는 나도 누군가에게 시월드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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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잘한 것이 없어도 일 년에 하루는 축하를 왕창 받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생일인데 왜 드레스를 안 입고 왔냐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드레스라도 입고 와서 축하 소감이라도 한마디 했으면 웃겼겠다. 하지만 내 생일은 줄곧 기록적인 한파다. 2년 전 강남역에서 생일파티 겸 이벤트를 한 번 열었는데 그날도 기록적인 한파로 당일에 참석을 취소한 사람도 있었다. 엄마 날 왜 이렇게 추울 때 낳으셨나요... 낳느라 고생한 엄마에게도 고맙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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