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
1
손발이 꽁꽁 묶였다. 누군가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 소리를 질러야 한다.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질렀는데 목에서 바람소리만 나온다. 배와 목에 온 힘을 다 주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바람 소리만 나온다. 계속해서 나는 온몸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쉰 목소리만 약간 나오는 정도다. 그렇게 끌려가다 꿈에서 깬다. 도망쳐야 한다는 급박함에 휩싸여 있다 꿈이 라는걸 알게 되면 안도감이 밀려온다.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2
다급한 상황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꿈을 종종 꾼다. 가위는 한 번도 눌려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도 가위의 일종이라고 한다.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정말 무섭다. 진짜로 내가 구조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완전 무력해지면 어쩌지. 그런 불안감에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이 상황에 실제로 해야 할 대처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한다. 핸드폰으로 위급상황을 알리는 법을 알아둔다거나. 목소리를 대체할 수 있는 호루라기나 긴급 호출용 전자제품을 사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인터넷에서 위급 시 호신용 제품은 뭐가 있는지 검색해 본 적도 있었다.
3
꿈에서는 현실에서 겪을 수 없는 극한 상황을 많이 겪는다. 강도가 들어 가족이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집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정장을 입고 도망을 치다가 총을 맞은 적도 있었다. 이런 꿈을 꾸다 깨어나면 잠을 하나도 안 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밤새 뛰고 도망치다가 아침을 맞은 느낌. 분명 잤는데 하나도 못 잔 것 같은 피곤함을 안고 출근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4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는 꿈에 대한 재밌는 장면이 나온다. 뇌 속의 꿈 제작소에는 배우들이 있는데, 배우들이 어설픈 분장을 하고 현실의 인물을 연기한다. 재밌게도 꿈 제작소 카메라를 비추면 어설픈 분장은 무척 완벽한 현실 속 인물로 재탄생한다. 내 꿈도 그렇게 만들어져 나온다고 생각하면 우습다. 간밤의 무서운 꿈도 가면 분장의 어설픈 연기자들의 활약일 거라고 생각하면 별로 심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요즘 압박을 좀 받고 있는 건가, 하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 같다.
5
몇 년 전부터 손금과 관상에 흥미를 가진 탓에 간혹 그런 분야의 책 코너에 갈 때가 있다. 거기에 가면 듣도 보도 못한 흥미로운 책들이 많다. 관상과 수상뿐만 아니라 꿈해몽, 사주 풀이 등등 온갖 미신(?)스러운 것들이 한 군데에 몰려있다. 나는 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꿈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야 한다거나, 아기를 가지면 주변 사람들이 태몽을 대신 꾸게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 꿈에 대해서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6
아직까지 나는 루시드 드림이라고 불리는 꿈은 한 번도 꾼 적이 없다. 자각몽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꿈이라는 것을 꿈속의 내가 알고서 꿈의 내용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인 중에 자각몽을 꾸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주로 꿈속에서 날아다닌다고 했다. 자각몽의 세계속에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기분 좋은 활동이 날아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각몽을 꾸게 되면 날아야지,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괜찮은 경험일 것 같다. 나도 나중에 자각몽을 꿀 수 있다면 자유롭게 날아다녀 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바닷속에서 커다란 고래랑 같이 헤엄도 치고 싶다. 현실의 나는 수영을 잘 못하기 때문에... 꿈에서라도 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