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의 아이돌

D-17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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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무한도전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다음 주 예고편에 애쵸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미 젝스키스도 완전체 무대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 H.O.T 무대도 완전체로 볼 수 있겠지 생각은 했지만. 그날이 정말로 오다니. 이거 실화냐.


2

유튜브에서 H.O.T의 예전 무대를 찾아서 봤다. 열맞춰나 아이야 같은 노래들은 지금도 가사를 전부 외워서 부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곡이 아웃사이드 캐슬이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뮤직뱅크 생방송 무대를 봤다. 오케스트라가 전주를 연주하는데 전주 길이가 하세월이다. 이렇게 전주가 긴 노래가 요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웃사이드 캐슬 때까지도 문희준 카리스마가 작렬하고 있었다. 턱선이 갸름하고 슬픈 눈빛으로 팬들을 지배하는 문희준 얼굴을 보니 참 많은 역사가 스쳐 지나간다.


3

내가 고등학생일 때 문희준이 락을 한다고 솔로 활동을 했다. 그때 정말 구름 같은 안티팬을 몰고 다녔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열린 학교 축제에 아마추어 밴드가 한 팀 왔다. 아마 저렴한 가격에 부를 수 있는 밴드였을 것이다. 그 밴드가 저녁 공연에서 문희준 욕을 얼마나 했는지. 왜 그 팀은 자기 노래 안 부르고 다른 가수 욕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흥이 나서 그랬는지 꽤 과격한 발언을 이어갔다. 결국 통제가 안 되는 무대 때문에 전교회장 선배가 무대에 난입해서 그 공연을 종결시켰다. 선배가 발차기 비슷한 걸 했던 듯한 기억이 난다. 우리 학교는 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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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애쵸티 무대를 찾아보는데 중간중간 웃긴 게 많다. 왜 옛날에는 뮤직뱅크 같은 가요 프로그램에 가수들을 일렬로 세우거나 앉혀놓았던 걸까. 지금은 가요계 대선배일 사람들이 새초롬한 얼굴로 옹기종기 앉아 있다. 터보는 머리에 구름 같은 모자를 썼다. 로얄젤리라는 그룹이 영상에 종종 나오길래 이 그룹은 대체 뭘까 무대를 찾아봤다. 이인조 남성 그룹인데 보컬은 트로트 창법으로 노래를 하고 나머지 한 명은 래퍼다. 예상치 못한 장르에 랩을 맞춰 부르는 둘을 보고 남편과 박장대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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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갑자기 90년대 가요에 꽂혔는지 유승준, 휘성, 플라이투더스카이 노래를 차례로 재생 중이다. 이 와중에 나는 왜 그 시절 노래 가사 다 외우고 있는 거니... 엉덩이가 들썩거려서 글 쓰는데 통 집중이 어렵다. 반대로 남편은 90년대에 해외 음악에 빠져서 한국 가요를 전혀 모른다. 방금도 플라이투더스카이를 보면서 아 사람이 복면가왕에 나왔던 사람이냐고 묻는다. 나는 남편을 보면... 90년대에 한국에 살았던 게 맞냐고 묻고 싶다. 길거리만 많이 나다녔어도 익숙할 노래인데. 장나라가 연기자가 아니라 가수였냐고 물어봐서 더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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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JTL 노래가 나오고 있다. 아 애쵸티도 나중에 일부만 재결합해서 활동을 했었지. 이것도 기억 저편에 넘어가 있었네. 장우혁은 무대에 등장하면서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손가락 사이에서 갑자기 불이 탁 켜졌다. 헐. 토니안은 용이 그려진 종이를 찢고 나오면서 등장했다. 어떡해 너무 허접함... 그리고 이 유닛부터는 이재원이 갑자기 보컬로 변신해서 노래를 한다. 참 애쵸티 멤버들도 열심히 살았다. 내 학창 시절의 우상 애쵸티, 다음 주 무도는 밥을 미리 차려놓고 본방사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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