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

D-21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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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첫 취미는 말짓이 아니였을까. 엄마 몰래 포일을 뜯어서 기린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학교에서 소다를 가져와서 뽑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것도 엄마 몰래 해보려고 숟가락에 했다가 불어난 소다 때문에 넘치고, 숟가락 다 타고 난리도 아니었다. 냉동실을 털어서 떡볶이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완전 범죄를 위해서 설거지까지 해두었다. 하지만 과연 엄마가 몰랐을까? 아마 알고도 모르는 척해주었겠지 싶다.


2

초딩 때 만화의 세계에 눈 뜨게 되었다. 엄마는 만화책을 보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굴할 내가 아니었다. 만화책을 책상 서랍 깊이 숨겨두고 봤다. 그러다 결국 발각되고 말았는데 엄마는 한 번만 더 만화책을 빌려오면 만화책을 찢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엄마가 그 말을 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만화책을 찢기면 얼마나 변상해야 할지 가격을 셈해보고 있었기 때문에다. 역시 말을 들을 생각은 별로 없었던 과거... 엄마가 나 키울 때 참 힘들었겠다.


3

만화책 보던 취미는 지금은 웹툰 보는 취미로 변했다. 이제 만화책은 간혹 보지만 웹툰은 매일 본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십 년 넘게 매일 웹툰을 보고 있으니... 이것은 꽤나 오래된 취미이다. 뭐든 꾸준히 하는 법이 없는 내가 이토록 긴 시간 몰입하는 취미가 있다니, 반전이다. 나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4

그리고 이십대 중반에 폴리머클레이라는 클레이 공예에 빠졌다. 재밌기도 했고 아무 생각 없이 만들기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큰 휴식이 되었다. 결국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가르쳐준 선생님을 도우러 한 번 강사로 나간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학부모 교실이었다. 초등생을 자녀로 둔 어머니들이 오는 수업이었는데 아주머니들 리액션이 너무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너무 재밌어서 나의 적성은 아주머니들을 가르치는 강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5

요즘에는 재봉틀 두 개를 집에 들이고 바느질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이 취미 생활은 시작할 때 엄마의 포풍 같은 지지를 받았다. 뭔가를 산다고 하면 절약하라고 꾸중하는 엄마가 재봉틀은 재산이라며 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물론 재봉틀이 있다고 하니까 집에 있는 바느질감을 몰아주려고 하는 조짐이 있다. 엄마가 만들어 달라는 것은 다 이상한 물건들 뿐이다. 이불은 얼굴 쪽만 금방 더러워지니까 이불 절반만 끼울 수 있는 이불보를 만들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안전벨트를 감싸서 어깨를 폭신하게 받쳐주는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도 했다. 내가 만들어준 맨투맨 티셔츠는 목이 잘 늘어난다며 옷감의 질에 대해 짠 점수를 줬다. 역시 엄마를 만족시키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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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 말고도 요리에 약간의 취미를 붙였다. 지난주에는 무를 썰어서 생채를 만들었다. 생강을 조금만 덜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 맛이다. 처음 만드는 요리들은 이렇게 늘 아쉬움이 있다. 굽거나 끓이는 것보다 나는 절이는 류의 요리가 재미있다. 동치미나 피클, 생채 같은 절임 요리는 시간이 가면서 음식의 맛이 변한다. 그 최적점에 가장 맛있는 것을 먹게 된다는 점이 재밌다. 또 맛이 바로 안 나기 때문에 만들면서 맛을 봐도 별로 소용이 없다는 점도 좋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뽑기를 뽑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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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요리도 더 잘하게 되고 싶다. 아직 안 만들어 본 옷들이 참 많다. 또 못해본 음식도 정말 많다. 이 취미의 관문을 하나씩 뚫어가는 과정도 한동안 참 재미있을 것 같다. 웹툰은 십 년 봤는데 이 취미 생활은 앞으로 얼마나 하게 되려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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