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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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회사원이라면 회사생활에서 이사를 빼놓을 수 없다. 업계 특성상 내부 변화도 잦아서 사무실 내에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 급한 짐만 풀어놓고 쓴다. 그러다 보니 풀지 않은 박스가 하나가 되고, 이년 정도 지나면 그 박스가 하나 더 늘어나서 두 개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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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직 전체에 큰 개편이 있어서 대거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번 이사의 특징은 같은 층에서 서로서로 자리를 바꾸는 이사였다. 자리를 바꾸는 이사는 과정은 꽤 재밌다. 내가 이사 갈 자리의 H가 자리를 빨리 못 빼서 기다리는데, 내 자리에 들어올 J가 짐을 들고 오는 식이다. 서로서로 맞물린 자리 빼기 재촉질이 퍽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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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할 때쯤이 되어서야 책상 위의 먼지를 다시 보게 된다. 내 자리에는 열 권 남짓한 책이 꽂혀 있다. 그 책들 중에서는 입사할 때 받고 몇 장 쓰지 않은 수첩도 있고, 몇 년 전에 열심히 보다가 지금은 잘 보지 않는 기업 경영서들도 있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않았으면 이만 철수시켜야 했는데. 회사의 일상은 그런 변화를 잘 수반하지 않는다. 큰 불편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두는 식이다. 그렇게 일 년을 앉아 맞은 먼지가 책의 틈새에도 뽀얗게 쌓여있었다. 쌓아둘거면 먼지라도 닦던가, 안 볼 거면 치우던가 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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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면서 재밌는 물건도 많이 발견되었다. 몇 년 전에 오피스를 옮기면서 새 오피스 사용법이라고 써진 팸플릿을 주었는데 그것도 버리지 않고 놔두었다. 재작년 우리 팀 리더였던 M이 팀의 비전과 목표, 그리고 개인이 달성해야 할 내용을 예쁘게 양면으로 코팅해서 준 코팅지. 신혼여행 가서 먹어보려고 사 왔던 비스킷. 예뻐서 못쓰고 아껴둔 스티커들. 이제는 오래돼서 먹지도 못하고, 철 지나서 쓰지도 못하는 것들을 왜 이렇게 이고 지고 있었을까. 몇 개는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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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에는 문제가 생겼다. 자리 배정을 한 분이 착오가 있어 결국 자리가 모자랐다. 몇 명이 아예 다른 층으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그게 우리 팀이 되었다. 다시 옮기던 짐을 추스러서 아래층으로 옮겼다. 아래층 사람들은 2년 전까지 함께 같은 팀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옮긴 곳은 새로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되었다. 몇 년이 흘러 다시 만난 우리들은 어떤 팀워크를 만들어서 일하게 될까 사뭇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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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는 다른 층으로 출근을 한다. 그래 봤자 한 층 아래지만, 또 새로운 곳에서 어떤 일들을 해나가게 될지 사뭇 기대도 된다. 근데 책상에 아직 풀어놓지 못하고 온 짐들은 누가 대신 좀 정리해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