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1
밸런타인데이다. 간혹 한국에서도 사회화가 덜 된(?) 사람들은 밸런타인데이에 누가 누구에게 선물을 주는 건지 헷갈려한다.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날인 거 너무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 헷갈리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독 여자가 고백하는 날로 여겨지고 있다나.
2
이년 전 오늘 나는 남편과 수목원에 갔다. 당시 남편은 썸남의 신분이었다. 추운 날이었지만 나는 원피스에 코트를 걸치고 나갔다. 수목원에는 눈이 내렸다. 추워서 카페에 들어가서 차를 마셨는데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야에 눈 내리는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퍽 로맨틱한 장면이었다. 한 겨울 수목원에 꽃은 없지만 라이트를 켜는 이벤트를 했다. 해가 지고 색색의 예쁜 등이 켜졌다. 눈 내린 어두운 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대화하던 기억이 난다.
3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나는 예쁘고 맛있는 초콜릿을 샀다. 패션 파이브까지 가서 초콜릿을 사면서 이 정도면 좋아한다는 의사표현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편은 초콜릿을 받았지만 수목원에서도,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도통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사귀자고 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왜 그냥 가는 거지 약간 맥이 빠졌다.
4
자기 전에 썸남인 남편과 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솔직한 마음을 실토하고 말았다. 이 정도 서로 마음을 확인했으면 사귀자고 이야기하실 때도 되지 않으셨나요? 내 돌직구에 남편은 우물쭈물하면서 아, 네, 뭐, 이런 말로 답을 이어가다가 그럼 오늘부터 사귀어요,라고 말했다.
5
오늘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다가, 문득 우리가 사귄 날이 밸런타인 데이였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이 년 전에는 사귀지도 않던 사람이랑 지금은 함께 살고 있다니, 정말 인간사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앞으로 남편이랑 무슨 또 얼척없는 일들을 함께 벌이게 될지 기대가 된다. 결혼을 해서 그런가 올해는 남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지는 않았지만, 저녁에 딸기를 하트 모양으로 잘라서 같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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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오늘 내내 몰두하던 일에 성공했다며 기뻐하고 있다. 뭐에 성공한 건지는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식 수술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일단 나도 같이 기뻐해야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