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
1
설 하루 전날에만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다고 해서 오늘 시댁에 갔다. 시댁에 가면 가장 먼저 쫑이 달려 나온다. 시부모님이 키우는 희고 통통한 강아지다. 며칠 전에 미용을 해서 털이 무척 짧았다. 덕분에 볼록한 배와 옆구리 살은 더 잘 보였다. 사람 보면 잘 짖는다고 해서 시댁에 처음 인사 갈 때 가장 나를 긴장시킨 존재였다. 나를 보고 왕왕 짖어대면 어떡하지. 하지만 이제는 친해져서 늘 쓰다듬어 달라고 등을 내민다.
2
어머님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남편이 보인다. 얼굴 중에서도 특히 턱의 생김새가 무척 닮았다. 매일 마주 보고 사는 사람과 닮은 사람을 보는 느낌은 특별한 것 같다. 어머님과 남편은 성격이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한 데가 있다. 둘 다 피자를 좋아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물건을 좋아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재밌으니까 일해도 힘든 줄을 모르겠다고 어머님은 말씀하신다. 일도 개발, 취미도 개발인 남편과 겹쳐 보인다.
3
시조카는 몇 달 뒤에 두 돌이 되는 아기다. 덩치도 좋고 힘도 세다. 돌 때쯤 월령에 맞는 넉넉한 옷을 선물했는데 상의는 맞았지만 바지는 쫄바지가 되었다. 허벅지가 껴서 바지가 터질 것 같았다. 오늘도 스켈레톤 선수 허벅지를 보면서 조카 허벅지처럼 생겼다며 웃었다. 과일을 먹을 때 상대방의 과일과 맞대며 '짠'이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본인 원하는 걸 안 들어주면 뒤로 벌렁 눕는다. 누울 때 자신의 머리도 함께 사정없이 바닥에 내부친다.
4
아버님은 즈그 아빠 어렸을 때랑 똑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물론 아버님은 상냥한 마음의 소유자라 우리 부부만 있을 때 살짝 알려주셨다. 오늘 하루 종일 시조카와 함께 가장 격렬하게 놀아준 사람은 아버님이었다. 할머님 댁에서 조카는 빨래집게에 꽂혔다. 아버님과 조카가 둘 다 머리고 옷이고 빨래집게 투성이가 되어 놀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아버님도 조카 못지않게 해맑으셨다.
5
친정에서는 뽀얀 국물에 파가 많이 든 떡국이 나온다. 시댁 떡국을 처음 먹어봤는데 맑은 국물에 김치 만두가 들어간 떡국이 나왔다. 어머님은 고명으로 지단과 김 그리고 실고추를 올려주셨다. 우리 집에는 실고추라는 요리 재료를 한 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서로 다른 집안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명절은 즐거운 시간인 것 같다. 내일 친정갈 때 차만 안 막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