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인간

D-41

by Lucie

1

밖에서 뛰어놀던 시절이 언제던가 싶다. 아침이면 지하 주차장에서 또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출근하면 해가 져야 밖으로 나온다. 집에 한 번 들어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나가기가 싫다. 지하 1층만 가면 분리수거를 할 수 있건만, 그것도 귀찮아서 분리수거 바구니에 플라스틱 케이스들이 비죽비죽 넘친다.


2

어렸을 때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등나무와 벤치가 있는 곳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술래를 뺀 사람들이 벤치 위를 건너 다니면서 술래를 피하는 놀이도 했다. 나는 팔의 근력이 좋은 편이었는지 매달리는 걸 잘했다. 놀이터에서 가장 높은 미끄럼틀은 타는 곳에 이슬람 궁전 같은 지봉을 이고 있었는데, 거기 외벽을 타고 올라가곤 했다.


3

그렇게 뛰고 매달리고 손이 까매지도록 놀았다. 흙과 나뭇잎을 뜯어다가 국이네 밥이네 하며 소꿉놀이도 했었다. 한참 친구들과 놀고 나면 해가 뉘엿뉘엿 졌다. 기울어진 해가 빨간빛을 만들어내면 그림자도 힘없이 늘어졌다. 그런 기다란 그림자를 끌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어스름해질 때가 집에 갈 시간이었다.


4

중학생 때는 친구들과 맥도날드나, 노래방, 팬시점 같은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야외 활동은 현격하게 줄었다. 이대의 옷가게들을 누비던 생활도 점점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쪽으로 변했다. 번듯한 건물이라고는 CBS 하나밖에 없던 동네에 영화관과 서점, 백화점이 함께 있는 멀티플렉스들이 들어섰다. 점점 밖에서는 놀 것이 없어졌다.


5

요즘 간혹 남편과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뛴다. 지하에 헬스장이 있지만 야외에서 뛰고 활동하는 게 훨씬 상쾌하다. 이마저도 시간이 어쩌다 될 때, 미세먼지 농도가 심하지 않아야 가능한 생활이다. 햇볕을 받으며 움직이고, 해가 어스름하게 질 때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일상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어딜 가든 핸드폰을 열어 보거나, 노트북을 열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시간을 길게 보내지 못하는 습관도 생겨버렸다. 좀 더 눈을 편안하게 두고 팔다리를 쓰고 느끼면서 시간을 보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6

신발장에 스피드민턴 라켓이 생각났다. 사놓고 두 번밖에 쓰지 못한 물건이다. 올봄엔 좀 더 쓸 수 있으려나. 운동을 하려고 나는 트레이닝 바지를 하나 사고 남편은 운동화를 하나 샀다. 장비는 모두 준비되었으니 이제 열심히 써야지. 남편과도 햇볕을 잔뜩 받고, 어스름할 때까지 밖에서 놀다가 함께 집에 들어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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