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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5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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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친구들이 서른 셋이 되었다. 작년 겨울부터 서른 세살이니까 삼월 삼일에 놀자고 단톡방에서 난리를 치더니 결국 모임을 만들었다. 몇 시에 모이는거냐고 물어보니 뭐야, 당연히 세시 삼십 삼분이잖아, 그게 예측이 안되는거니?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숫자 삼 마니아 모임이라도 되는 건가.


2

세시 삼십삼분까지 삼청동으로 오라는 공지가 떨어졌다. 삼청동에서 삼페인을 마신다고 한다. 깊어지는 삼에 대한 집착... 친구가 챙겨오라고 한 브루마블을 현관문 앞에 챙겨놓고 집을 나설 준비를 하는 중이다. 삼청동에 있는 한옥집을 빌려놓았다고 한다. 날씨가 좋아서 운동회 모드를 가동하겠다며 난리다.


3

동갑내기 친구모임은 회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주변의 동갑내기들을 삼삼오오 초대하다가 만들어진 톡방이다. 톡방이 생긴지 몇 년이 흘렀고 그간 분사도 많아서 이제는 같은 회사가 아닌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도 이 모임은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우리를 묶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같은 지역으로 출근한다는 것, 나이가 같은 것, 일하다 모르는 게 있을 때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라는 것.


4

단톡방에서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보면 대부분 해결이 되었다. 누군가 답을 찾아주거나 연결해주거나 해결을 위해서 노력해주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위로하기도 했다. 누구 하나가 신용카드를 만든다고 하면 괜찮은 신용카드 추천까지 해주는 단톡방이었다. 일부터 생활까지 질문 커버리지가 엄청난 톡방이었다. 우리끼리 모이면 86방 애들은 참 착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 하는 애들도 참 착했다. 누가 누굴보고 착하대. 너네도 다 착해.


5

언젠가는 강남에 있는 주택을 빌려서 엠티를 가기도 했고, 건대에 있는 좋은 오피스텔을 빌려서 회를 떠 먹기도 했었다. 회사에서는 더이상 술을 먹이는 상사가 없는데 이 모임에 가면 누군가 맥주에 소주를 콸콸 부어서 나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우리끼리 돼지씨름을 하다가 누군가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만나면 진짜 이상한 말도 많이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도 많이 일어나는 모임이다.


6

주말 모임이라 남편과의 시간을 빼앗기기 싫은 마음이 있기도 했는데, 이제 더이상 이렇게 단체로 와구와구 모여서 노는 모임이 별로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막상 가면 또 무지막지하게 놀고 재밌는 추억을 하나 쌓게 될 것 같다는 마음에 마음을 바꿔 참석하기로 했다. 날씨가 참 좋다. 날씨요정도 33세 호랑이띠 아이들과 같은 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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