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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화를 살까 싶어서 백화점에 갔다. 퇴근 후 백화점에 가면 쇼핑할 시간이 빠듯하다. 궁금하고 관심 있는 매장은 모두 제치고 스포츠 코너로 갔다. 뉴발란스 매장에서 몇 종류 신어보고 아디다스로 갔다. 아디다스 러닝화는 뭔가 쫄깃하게 발을 감싸주는 감이 확실히 달랐다.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아서 구매하고 싶었는데, 내가 신는 사이즈는 전부 팔리고 없다고 한다. 그나마도 디스플레이되어있는 상품이 재고의 전부여서 사더라도 매장에 전시된 제품을 사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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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은 건 남도 다 좋은가 보다, 생각하고 매장을 나섰다. 오늘 쇼핑의 주요 목적은 신발을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월은 조카의 두 살 생일이자 서방님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조카 선물을 사러 아동코너로 향하다가 레고샵을 발견했다. 두 살이 레고를 어떻게 맞추나 생각했는데 한 살 반용 레고도 있었다. 생일케이크 모양 블록이 있어서 바로 골랐다. 레고 마니아인 남편이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한 바퀴를 돌다가 스타워즈 레고를 발견했다. 어쩌다 보니 서방님 선물까지 레고로 구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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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샵에는 완성된 레고 타지마할이 전시되어 있었다. 둥그런 지붕이 탐스럽게 씌워진 커다란 사원이 무척 멋있었다. 저거 맞춰서 놓으려면 집을 사야겠네요,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집에는 저렇게 커다란 물건을 놓을 데가 없다. 런던 타워브리지를 놓기 위한 자리도 겨우겨우 마련했는데, 타지마할은 타워브리지보다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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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욕심은 정리 정돈할 공간 제약과 청소 에너지 앞에서 여지없이 사라진다. 물건을 사려면 일단 둘 곳도 필요하지만 많아지면 정리 정돈하는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 청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광내기와 줄 맞추기. 나는 광내기에는 강하지만 줄 맞추기에는 약하다. 즉 뭔가를 쌓거나 담거나 늘어놓는, 즉 정리정돈에 약한 타입이다. 대충대충 쌓아뒀다가 문을 열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거나 하는 일이 잦다. 어렸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서랍 속엔 각종 물건이 굴러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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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물건 사는 일이 늘 주저될 수밖에 없다. 물건이 많아지면 광낼 바닥 공간도 줄어들고, 뭔가를 잘 쌓거나 구획을 나눠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물건만을 사고자 노력한다. 오늘도 신나게 러닝화를 보고 돌아왔지만 일 년에 얼마나 뛴다고 뜀뛰기용 신발을 따로 사나, 망설여진다. 신발 사서 운동 많이 하면 되지요, 남편이 옆에서 쇼핑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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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텅 빈 냉장고가 걱정이다. 내가 신발 고르고 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이번 주말에는 먹을 것을 사다가 밑반찬을 좀 만들어야겠다. 결국 일기의 마지막은 새로운 뽐뿌의 장착으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