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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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는 법원이 있다. 법원과 검찰청이 나란히 네모난 각을 자랑하며 서있다. 그 앞에는 공원이 있는데 커다란 법원의 위세에 눌려 법원 앞 정원인가 싶지만, 그래도 꽤 알차다. 놀이터와 농구장, 각종 운동기구가 있고 한 바퀴를 천천히 뛰면 8분 정도 걸린다. 날씨가 따듯해지면 공원을 좀 뛰어야지, 하는 로망을 겨울 내내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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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날이 풀려 공원을 몇 번 뛰었다. 주말 오전 따듯한 햇볕을 쬐며 공원을 뛰면 살아있는 느낌이 났다. 물론 살아있는 느낌은 두 바퀴가 한계이긴 하다. 두 바퀴를 뛰면 더 뛰면 무리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아직 더운 날이 아닌데도 두 바퀴 뛰면 겉옷을 벗고 반팔 차림으로 거친 숨을 몰아 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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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집에서 햇살이 좋아서 자전거를 타겠다며 호기롭게 나온 적이 있었다. 친구가 알려준 만두 맛집이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라서 자전거를 타고 거길 가자며 등가방을 메고 나섰다. 그런데 밖에 나서는 순간 호된 바람이 뺨을 때렸다. 집 앞 따릉이 대여소에 서서 앱을 켜서 결제를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타고 밖을 달리기엔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 결국 우리는 자전거를 포기하고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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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버스는 30번이었다. 세 자리 수의 파란 버스와 달리 이 버스는 구불구불한 마을의 좁은 길에 들어섰다. 아파트의 상가들에 생각보다 연기나 보컬 학원이 많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바깥 구경을 했다. 맛집은 시장 골목 안에 있어서 시장 입구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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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시장을 걸었다. 아울렛이나 백화점이 아닌 시장길을 걷는 게 너무 오래간만이었다. 가장 최근에 간 시장이래 봐야 강원도 어디쯤이었다. 서울 시내에서 시장을 가는 것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입구에서는 붕어빵도 팔고, 각종 분식들과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그득한 가게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문득 대형마트가 아닌 곳에서는 채소나 과일을 내가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종 나물을 바구니에 담은 좌판들, 비닐이나 플라스틱 통에 포장되지 않은 채로 팔리고 있는 과일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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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호된 탓에 그날 시장 구경은 별로 못했다. 멀리 찾아간 만두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남편마저 맥주를 더 따라 달라며 만두가 맥주를 부르는 맛이라고 했다. 날씨가 다시 따듯해졌으니 자전거를 타고 그 만두집에 다시 가고 싶다.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봄나물을 사 가지고 오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