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6
1
최초의 꿈은 아나운서였다. 그 꿈을 포기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인 것 같다. 나는 거울 속의 내가 아나운서들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보다 예쁜 애들은 반에도 수두룩했다. 꿈이 아나운서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기도 했다. 너처럼 못생긴 애가 아나운서를 하겠다고? 실제로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움츠러들었다. 장래희망란에는 다른 것들이 적히기 시작했다.
2
엄마보다 서너 살이 많은 이모는 나를 두고 말했다. 얘 눈 이렇게 쌍꺼풀도 없고 답답해서 쓰겠니? 수술하면 얼마나 좋아? 결국 엄마는 이모가 소개한 병원에 나를 데려갔다. 성형외과 의사는 퉁퉁한 내 눈꺼풀을 억지로 살짝 접어서 쌍꺼풀 수술을 하면 이런 느낌이 날 거라며 보여줬다. 거울 속의 나는 웃기게 눈꺼풀을 접어놓은 나였다. 수술을 하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 어디 아픈데도 없는데 전신마취를 하고 마취에서 깨면 또 아플 거라는 게 싫었다. 엄마도 겁이 많았다. 수술 안 하고 싶다는 말에 엄마도 흔쾌히 동의했다.
3
입사한 회사에서는 사내방송 리포터를 종종했었다. 행사가 있어서 아이유 인터뷰를 하다 우연히 아이유와 한 앵글에 나란히 잡힌 적이 있었다. 찰나처럼 지나간 장면이었지만 나는 보고 말았다. 아이유와 나의 현격한 차이를. 얼굴뿐만 아니라 덩치 차이도 엄청났다. 아이유와 함께 있을 때 내 떡대가 킹콩처럼 보였다. 마침 딱 그때쯤 매월 붓던 적금 만기가 돌아왔다. 사회생활 일 년 만에 처음으로 천만 원이 넘는 목돈을 쥔 나는 돈을 어떻게 써볼까 궁리하다 교정을 해보기로 했다.
4
정작 교정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었다. 교정을 한 이후에 이렇게 오랫동안 이를 고정해야 하는지 알았다면 아마 시작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윗니 뒤에 붙어있는 철사가 있어서 일 년에 한 번은 치과에 들른다. 당시 치과의사는 나에게 치열이 고른 편이니 굳이 교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또 입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나이가 들어 보이기 때문에, 십 년 뒤에는 교정을 안 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때도 인생욜로였던 나는 젊을 때 예쁘게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십 년 뒤에 일어날 일은 나중에 걱정하면 되니까.
5
교정하는 동안 팔자주름이 심해졌다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뚜렷한 팔자주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외모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팔자주름은 웃을 때 생기는데 웃는 주름은 사람 좋아 보이고 좋지 않나 싶다. 눈가에도 주름이 생기고 기미도 올라온다. 아직은 굳이 없애고 싶지 않다. 기미는 내가 태양과 교감했다는 증거인 거 같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더 내 스타일에 어울리는 것 같다.
6
얼굴에 그냥 만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귀차니즘 때문이다. 피부과에 가는 것도 귀찮고, 꼭 치료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아픈 걸 참아야 한다는 것도 싫다. 그래서 그냥 이만하면 됐지 뭐, 하고 포기해 버린 것 같다. 그래서 부지런하게 샵에 다니고 관리해서 더 예뻐지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공평한 것 같다. 노력하고 투자하면 그만큼 결과가 돌아오는게 맞다. 나는 귀찮아서 이런 얼굴인거고, 나의 선택이니까 이렇게 생긴걸로 책임진다, 하는 마음.
7
언제나 동안 소리를 듣는 남편도 있고, 나도 언젠가 갑자기 나의 못생김을 없애고 싶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예쁜 외모를 만들 수 있는 의료기술들이 많이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나만의 얼굴, 내가 살아온 시간을 증명하는 그런 외모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다만 너무 빨리 노화되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선크림은 열심히 발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