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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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를 주제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일상 이야기로 책을 쓴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책이란 읽어줄 사람이 있는 글의 묶음이다. 즉 읽힐만한 콘텐츠를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인 나에게 그런 특별한 주제는 없었다. 회사 다니는 이야기를 좀 써보려고 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미 유행이 지나갔다고 한다. 퇴사 이야기, 퇴사하고 싶은데 퇴사 못한 이야기 등등 회사원썰 쓰나미는 이미 출판계를 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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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남은 거라고는 공황장애 이야기밖에 없는 것 같아서 웃겼다. 언제 공황장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스킨스쿠버에 도전해보나 싶었는데, 나에게 남은 특별한 것이라는 게 공황장애 밖에 없다니. 그래도 막상 쓰려고 하니 이 병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정신과도 오래 다니지 않았고 약도 얼마 못 먹고 끊고 말았다. 대학병원에 출입하는 정신병자 치고 경증의 환자에 속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이 병에 대해 써도 될까, 하는 걱정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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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일 년 전쯤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때는 바야흐로 국정농단 사건이 한창이었던 시절이었다. 최순실씨가 청문회 불출석 사유로 '공항장애' 라는 단어를 적어냈다는 것이다. 공황장애 환자에게 저 단어는 그렇게 가벼운 말이 아니다. 심장이 발바닥까지 떨어지는 느낌, 식은땀이 나고 호흡이 되지 않는 상황. 도대체 그게 무슨 문제인지 몰라서 이 병원 저 병원 찾아가 검사를 받았던 시간. 그 시간들이 쌓여서 '공황장애'라는 네 글자가 적힌 진단서를 받아 들게 되는 일. 그걸 겪고 나서도 내 병명이 공황인지 공항인지 헷갈릴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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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황장애가 공항인지 공황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내가 뭐 별걸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써도 되겠지. 또 나에게 갑작스레 공황을 겪었다며 연락 온 사람들 중에서는 그 사실을 주변에 비밀로 하는 이들도 있었다. 걱정할 가족들, 정신과에 다닌다고 이상하게 바라볼지도 모르는 동료들 생각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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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긴 통로를 지나 끄트머리쯤에 닿으면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었다. 회사가 많은 서대문의 대학병원에는 늘 환자가 많았다. 환자들은 긴 복도만큼이나 긴 벤치에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거기에 앉은 사람들은 대개 정신과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엑스레이로도, 피검사로도 나오지 않는 병. 끝나지 않을 듯 긴 문항에 응답을 하고 의사와 문답을 주고받으면 나오는 병명. 의사가 그냥 아무 말이나 하는 게 아닐까 끝끝내 의심을 거두기 어려운 그 진단을 여기 앉은 모든 사람들이 받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내 차례를 기다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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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러진 이후 엄마는 지하철에서 누가 쓰러지거나 하면 내 생각이 나서 꼭 도와주게 된다고 이야기했었다. 아주 멀리 있는 병이지만 언제라도 걸릴 수 있는 병. 또 막상 겪어보면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평범한 질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는 이 병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좋겠다. 많이 알면 예방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