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0
1
새벽에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한 남편이 늦잠을 잤다. 나는 살금살금 나와서 빨래를 널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빨래건조대를 폈다. 수건은 한 번만 조용히 털어서 건조대 위에 널었다. 빨래를 다 널어도 남편이 일어나지 않았다. 열 두시가 넘어서 점심 먹을 시간이었다. 살금살금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2
혼자서 장을 보러 나온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최근에는 요리가 좀 귀찮기도 해서 반찬도 좀 사고, 데우기만 하면 되는 피자나 냉면 같은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었다. 밀가루를 너무 많이 먹게 해서 아픈거 아닐까 싶기도 해서 오늘은 야채코너에서 오래오래 머물렀다. 이제 결혼한지 이년 차인 새내기 주부에게 채소로 맛있는 음식만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일단 무생채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무를 들었다.
3
메추리알 조림을 할까 했는데 깐 메추리알을 사는 게 좋을지 그냥 메추리알을 사다가 직접 삶는 게 좋을지 마음을 정하기 어려웠다. 고민하다가 집에 간장도 얼마 없던 것이 떠올라서 그냥 내려 놓았다. 간장은 주로 국이나 무침의 양념으로만 쓴다. 그렇게 쓰면 한 번에 한 두 숟가락만 쓰면 된다. 제일 작은 병을 사도 몇 개월은 쓰는데 조림을 하면 차원이 다르다. 간장이 숟가락 단위가 아니라 컵 단위로 들어간다. 다음번 간장을 살 땐 큰 걸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4
아픈 남편에게 질긴 채소만 먹일 수는 없어서 고민 끝에 고등어를 한 마리 샀다. 고등어 조림을 한다고 하자 생선코너에 계신 장인께서 손질을 완벽하게 해주셨다. 차마 눈 마주칠 수 없는 머리도 사라졌고 내장과 지느러미도 깨끗하게 사라져서 카트에 담겼다.
5
무를 깔고 고등어를 올리자 냄비 높이가 간당간당 했다. 결국 졸이다가 끓을 때 약간 넘쳤다. 조만간 높이와 너비가 적당한 냄비를 꼭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밥 해먹고 나니 세시가 되었다. 무생채 만들고 어묵조림 해놓으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될 것 같다. 이래서 예전에 된장, 고추장까지 직접 담가서 만들던 어머님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났던게 아닌가 싶다. 제대로 먹으려면 먹는데만 온 정성을 쏟아도 모자라는 것 같다.
6
새벽 응급실에 갔는데 바로 앞에 접수된 사람 기록이 화면에 떠있었다. 52년생 호흡기내과 환자라고 써있었다. 새벽 다섯시 무렵이었다. 밤중에 숨쉬는 것이 잘 안된다는 건 엄청난 공포일텐데. 지금 쓰는 몸 잘 닦고 조이면서 살아야 겠다는 되새기게 되는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