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1
1
다시 타야 돼요. 의사는 나에게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한다고 했다. 그 시절 나는 지하철은커녕 버스도 잘 타지 못했다. 나는 경기도에 살았고 늘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었다. 한 시간이 걸리던 출근길은 버스를 타게 되자 두 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렇더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버스뿐이었다. 어떤 날에는 버스에서도 너무 몸이 좋지 않아서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자리양보를 부탁했다. 그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가방 속에 비닐봉지를 꺼내서 토하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출근을 해야 하나. 토할지도 몰라서 가방에 늘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그런 출근길을 내가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을까.
2
지하철에 대한 공포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좀 둬야 할지, 아니면 바로 다시 타려고 시도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의사에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물었는데 의사는 타야 한다고 했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다시 내릴까 계속 고민했다. 안정제도 있고 도와줄 사람도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불안감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하늘이 빙글 돌았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점차 지하철을 익숙하게 탈 수 있었다.
3
회사에서의 매일이 낙담스러운 날들도 있었다. 그 시절 만났던 친구는 아주 자신 있는 말투로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너를 동기 부여하지 못하다니, 니 리더가 잘못했네. 친구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는 친구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정말 내 잘못이 아닐지도 몰라,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헤어지기 전에 친구는 나에게 거듭 같은 말을 강조했다. 힘들 때는 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그리고 나도 그중 하나야,라고 일러주고 버스정류장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4
어느 날 일을 하고 있는데 직장 동기 오빠가 메일로 짧은 소설을 보내왔다. 평소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나에게 이렇게도 쓸 수 있으니 너도 써보렴, 하는 이야기도 함께 건넸다. A4용지 한 장 정도의 짧은 이야기였다. 고맙다고 써보겠노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몇 개월이 지나서 오빠는 내 사무실 주소를 물었다. 나에게는 소설을 쓰는 팁이 적힌 책이 한 권 배달되었다. 그리고 일 년쯤 지나서도 오빠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싣는 독립출판물을 선물했다. 나는 그 책을 따로 사서 보기도 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설을 쓰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매일 쓰던 일기의 글감이 없어서 허구를 한 편 썼다. 그렇게 내 첫 소설이 탄생했다. 아무리 짧고 형편없는 이야기라도 나는 나의 첫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써졌지만, 그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나를 등떠민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내가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는 걸 잊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던져준 벗도 내 등을 밀어준 큰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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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들은 그런 것 같다. 평소와 아주 조금 다른 찰나. 닫히는 문 사이로 뛰어내리지 않은 것. 매일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책에서 잠깐 벗어나는 것. 일기에 사실이 아닌 허구를 쓰는 것. 그런 아주 약간 다른 순간. 그게 시작이 아닐까 싶다. 나는 매시간 매분 매초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늘 누군가가 그 시작을 나와 함께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