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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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708호 집에 살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중학교 졸업할 무렵까지 거기에 살았다. 707호에는 나와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살았다. 그 집도 내가 중학생일 무렵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계란이 떨어지면 빌려오기도 하고, 전을 부치면 나눠먹고 하는 집이었다. 섭섭한 마음에 아주머니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 여기 처음 이사 왔을 때 네가 얼마나 맹랑하고 귀여웠는지 아니? 이사 와서 짐 정리하고 있는데 네가 들어와서 나한테 그랬어. 아줌마 제가 얼마나 똑똑한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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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중학생이 되어서 사리분별이 되는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제가요? 제가 정말 그랬어요? 아주머니는 아직도 그 말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서 깔깔 웃었다. 나는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대체 어린 시절의 나라는 녀석은... 어떤 이상한 애였던 걸까... 하면서 자아의 분리감을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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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워 오지라퍼로 태어났다. 고3 야자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대학 입학 자료를 깡그리 읽은 뒤 진학 상담을 해주었다. 친구들의 생활기록부와 모의고사 점수가 정리된 파일을 훑어보면서 반장은 몇 번이나 해봤는지 따위를 물으면서 써볼 만한 수시전형을 찾아줬다. 대학 때는 걸어 다니는 행정실로 불렸다. 심지어 숙제나 중요 일정을 챙겨서 알려주면 한 학기 동안 밥을 사겠다는 재수생 오빠도 있었다. 오지랖이 살림에 보탬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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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것이 오지랖 떨기뿐이라니 슬프기도 하다. 특별한 기술이 있다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면 돈 버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오지랖은 경제적 능력이랑은 별로 상관이 없다. 다만 오지라퍼로 산다는 건 자잘하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나는 몇 년 전 서른 살 생일을 기념해서 파티를 열었다. 구글 닥스를 열어서 두 시간당 네 명만 신청을 받았다. 나는 카페에 하루 종일 앉아있고 약속된 시간마다 친구들이 와서 수다를 떨고 가는 형식의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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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도 안 되는 파티에 와줄 사람이 없을까 봐 나는 오는 분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약속했다. 선물은 '당신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글 한 편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초대된 사람은 열댓 명 정도였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8년 만에 보는 사람도 있었고, 자주 보는 사람도 있었으며, 많이 친한 사람도 또 서먹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A4용지 한 장 남짓한 글을 선물할 수 있었다. 나의 오지랖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소한 기억들을 저장하는 능력. 그것도 오지랖의 한 가지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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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좋아하는 교수님이 있었다. 나는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이야기한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깨알 같이 기억하고 있어 교수님을 놀라게 하곤 했다. 그런데 오지라퍼의 특성으로 인해 그런 기억능력은 교수님이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만 가동된다. 시험에 나오는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교수님의 개인사만 잘 기억한다는 비극적인 면이 있다. 지금도 조직인사 책에 나오는 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교수님이 왜 퇴사를 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그런 것들은 모두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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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대단한 것을 잘하는 건 아니라서 내세울 건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이런 오지랖이 좋다. 보는 사람마다 새롭고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긴다. 기본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이고 도와주고 싶다. 세상을 긍정적인 것으로 해석해 내는 경우가 많다. 사는 데에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능력치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