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8
1
어렸을 때 이모가 컵에든 보리차를 건넸다. 맛이 시큼 씁쓸했다. 내가 그걸 먹자 어른들이 와르르 웃었다. 그게 인생 첫 술이었다. 맥주였던 모양이다. 인생의 두 번째 술은 고등학교 이 학년 때였다. 여고생들의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축제를 무사히 마친 저녁이었다. 학생회장네 부모님은 우리에게 집을 비워주었다. 반듯한 상에 맥주와 주전부리 장을 봐주시고 찜질방에 가셨다. 술 마셔본 적도 없는 어린애들이 어디 엄한데서 사고 칠까봐 술 마실 거면 집에서 마시라는 배려였다.
2
겁쟁이였던 우리들은 술에 취할까 봐 두려워했다.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는데 아무도 많이 먹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아무도 '술에 취한다'라는 개념을 몰랐다. 어렴풋이 취하면 아무 질문에나 왈칵 진실을 대답해 버리는 거 아닐까. 묻지도 않은 진심을 늘어놓거나 와앙 하고 우는 거 아닐까. 춤추고 노래하다가 동영상에 찍혀서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되는 거 아닐까. 그런 걱정들을 했다. 결국 아무도 취하지 않았고, 얌전히 친구 집에서 어린 시절 앨범을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3
세 번째 술은 수능 백일 전이라며 마신 소주였다. 무려 학원 원장쌤이 사준 술이었다. 식당에서 소주 몇 잔을 마시고 집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두운 시장길을 지나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눈이 부셨다. 형광등이 평소보다 밝게 느껴졌다. 술을 먹으면 눈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조상들이 정월 대보름에 눈 밝아지라고 술 마시고 그랬던걸까.
4
네 번째 술부터가 대학에 합격하고 난 후다. 그때부터 난장판이었다. 처음으로 선배들을 만나는 술자리에서 소주를 주는 대로 다 받아먹고도 멀쩡했는데, 나는 내 주량이 그만큼인 줄 알았다. 그 뒤로도 그만큼을 마시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로 소주를 후룩후룩 마셨다. 술버릇은 이상하게 길들여졌다. 많이 마시면 필름이 끊기고 기억이 없는 나는 더 많이 마셔댔다. 적어도 그렇게 들었다. 나는 기억을 못 하니.
5
그 시절 와인에 대한 기호도 생겼다. 호주에서 일 년을 살았는데 다양한 와인이 많았다. 여럿이 모여 와인 서너 병을 마시면 병마다 다 다른 맛이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이 마시다보니 와인의 다양한 맛에 눈을 떴다. 약간 단맛과 떫은맛이 동시에 나는 레드와인을 좋아한다. 브리즈번에는 XXXX라는 이름의 맥주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 그 맥주가 가장 쌌다. 멜번에 가면 멜번 맥주가 제일 싸고 시드니 가면 또 시드니 맥주가 쌌다. 도시마다 다른 술을 마시면서 그때 맥주 맛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6
과한 술버릇으로 십 년을 시달리고 이제야 버릇을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술을 마시다 중간에 끊을 줄 아는 능력이 생겼다. 집에서 남편과 둘이 마셔도 와인은 반 병, 맥주는 딱 두병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정도다. 많이 마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맛있는 맥주를 사러 간다. 우리 집 근처 이마트는 세계맥주 셀렉션이 유명한 곳이다. 처음 보는 맥주를 마셔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두근거리는 경험이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고도 충분히 즐겁게 놀 수 있게 되었다. 되려 많이 마시면 이튿날을 날려버리는 일임을 이제는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