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0
1
우리 집에는 아재 개그 원톱이 있다. 바로 우리 오빠다. 집에 천도복숭아를 한 박스를 사 가지고 와서 엄마가 복숭아를 깎는데 갑자기 복숭아에 손을 갖다 대면서 말한다. 아 뜨거! 이거 1000도 복숭아라 뜨겁다! 나는 그런 개그에 절대 웃어주지 않는다. 개정색을 하면서 오빠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런 개그에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 남편.
2
남편한테 그런 개그에 웃어주지 말라고 했더니, 웃음을 막 참으면서 크크큭 하고 웃는다. 회사 그만두고 치앙마이 가서 살고 싶다고 하자 오빠가 그거 화장실에서 하는 말 아니야? 하고 묻는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치약을 달라는 뉘앙스로 우리에게 치앙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역시나 나는 정색을 했지만 남편은 옆에서 웃음 터지고 내 눈치 본다고 웃음을 참느라 난리가 났다.
3
집에서는 오빠가 원톱이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원톱이다. 나는 아무 말에 가까운 아재 개그로 사람들의 빈축을 산다. 동갑내기 모임에서는 루부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재 개그의 재미는 그런데에 있는 것 같다. 사람들 정색을 이끌어 내는 재미? 사람들이 정색하고 썰렁하다고 구박해주면 재밌다. 그래서 아재 개그는 패기 있게 쳐야 한다. 쭈뼛쭈뼛 거리면 안된다.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고 욕먹는 그런 맛으로 하는 것 같다.
4
작년에 회사 전사 건강성 측정을 했을 때도 나의 아재력은 발휘되었다. 우리는 설문 마지막 날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돌릴 쪽지를 만들었다. 마지막 날이니 설문을 꼭 해달라는 말이 적힌 메모지를 출력하고, 종이에 손글씨로 메시지를 적었다. 목표는 천 장을 적는 것이었는데 칠백장 정도 적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오늘도 행복하세요,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항상 힘내세요, 이런 상투적인 멘트를 적었다. 그러다가 아재 개그를 적으면 어떨까 하는 몹쓸 생각이 들고 말았다.
5
길가다 나무를 주으면, 우드득. 추장보다 높은 사람은, 고추장. 바나나가 웃으면, 바나나킥. 그런 것들을 손으로 꼭꼭 눌러 적었다. 다음날 책상 위에 아재 개그를 본 회사 친구가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거 너지... 말도 안 되는 아재 개그를 보고 바로 나를 떠올려 주다니, 그간 아재 개그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좋아할 게 아닐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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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 진짜 아줌마가 되고 나서는 이런 개그를 자제해야 할 텐데. 지금은 사람들이 정색하고 구박을 해주지만, 더 나이가 들면 누군가 어색하게 웃어주면서 재밌다고 해줄지도 모른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아재 개그 졸업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