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처방

D-71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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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 잔병이 많았다. 심적으로도 퍽 유약해서 엄마가 윗집 아주머니에게 먹을 것을 선물하는데 그걸 받네 마네 실랑이하는 걸 보고 경기를 일으킨 적도 있다고 한다. 기억나는 병은 주로 체하거나 열이 나는 것이었는데 꼭 밤에 아팠다. 밤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새벽이 되면 더 심해져서 엄마는 늘 병원 문이 열지 않은 시간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2

체하면 엄마는 꼭 손가락을 실로 묶고 바늘로 따주었다. 이런저런 약도 다 듣지 않을 때 가장 마지막에 하는 엄마의 처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처방을 극도로 싫어해서 곧 죽어도 손가락만은 내주지 않았다. 주먹 속에 꼭꼭 숨은 내 손가락을 따기 위해서 엄마는 갖은 수로 나를 구슬렀다. 엄마는 신기하게도 늘 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알고 있었다. 미미를 목욕시킬 수 있는 미미 전용 목욕탕을 며칠 전 문방구에서 봤던 터였는데, 엄마는 손가락을 따면 미미 목욕세트를 사주겠다고 공약했다. 미미 목욕탕 소리를 듣자 귀가 번쩍 뜨여서 결국 손가락을 엄마에게 넘겨주었다.


3

여름이면 엄마는 돗자리를 매트리스 위에 깔아주었다. 겨울이면 내가 좋아하는 극세사 이불을 꺼내 주었다. 그러고도 내가 감기에 걸리면 엄마가 빨리 따듯한 이불을 안 꺼내 준 것을 자책한다. 이런 걸 보고 부모질은 평생이라고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엄마가 해준 반찬이 들어있다. 집에 갔는데 반찬을 못 싸주는 날엔 엄마는 꼭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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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애를 낳지는 않았지만 엄마를 닮았다면 나도 저런 엄마가 되는 걸까, 가끔 궁금하다. 파워 오지라퍼이긴 하지만 우리 엄마만큼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반대로 엄마보다 더 심한 극성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목동에 사는 것을 고집했다. 사교육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친척들 모두 우리 엄마의 자녀교육이 약간 극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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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튼 오빠도 나도 그럭저럭 사회화되어 살고 있는 탓에 엄마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간혹 나에게도 아이는 세 돌까지 꼭 엄마나 가족이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건 엄마의 신념이니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지는 않지만 엄마가 만약 시어머니인데 저런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면 고구마다. 종종 엄마에게 나쁜 시어머니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경고해주는 정도로 수다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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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남편이 집에 가서 조금 콜록 거리면 바로 엄마의 감기 처방이 나온다. 히비스커스와 유자를 믹스한 향긋하고 달달한 차, 엄마가 애정하는 비타민 B 영양제와 생강쌍화탕. 그런 것들을 다 받아먹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다. 덕분에 우리 집 찬장에도 생강쌍화탕이 비치되어 있다. 엄마의 처방은 이렇게 나의 새 가정에도 전파되고 있다. 감기 기운이 돌면 엄마는 죽염을 물에 타주며 가글을 하라고 했다. 그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는데, 나는 어느새 남편에게 죽염 가글을 시키고 있다. 엄마 봇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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