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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귀국

D-75

by Lucie



1
저녁무렵 공항은 약간 흐렸다. 하루 종일 덥고 쨍쨍한 날이었는데. 내가 묵은 호텔에서는 오늘의 날씨를 분필로 입구에 그려준다. 오늘은 구름 없는 쨍쨍한 해로 그려져 있었다. 그래도 날씨란 알 수 없다. 비행기가 날아오르자 곧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다. 바다에 큰 배 몇 척이 떠있었지먼 실루엣만 알아볼 수 있었다. 발 아래로 바다가 펼쳐졌다. 멀리 보면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 발 밑도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2
바다는 참 넓다. 육지에는 도시가 생겨나고 수 많은 사람이 살 곳을 점유했다. 집을 짓는 비용 보다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서 내야하는 돈이 더 많아졌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물위에도 집을 짓게 될까.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바다를 건너는 긴 다리가 있다. 섬에 물건을 배달하는 드론도 운영되고 있다. 분명 근시일 내에 물위에도 집을 지을 것 같다.

3
교토가 참 예쁘고 좋았다. 남편은 교토 집값을 검색해서 알려주었다. 우리는 왜 서울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자문해봤다. 교토의 이층집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서울의 전세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교토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일을 하면서 사는 걸까. 알고 싶었다.

4
구름위로 올라오자 모든 것이 명징하다. 구름이 어디까지 있고 어디가 하늘인지 잘 볼 수 있다. 해는 빨간 이마를 구름위로 빼꼼 내밀었다. 저 빨간 이마가 사라지면 어둠이 또 천지분간을 못하게 만들 것이다. 해가 지면 흐린 것도 둥근 것도 각진 것도 모두 소용없다. 오직 밝은 것과 어두운 것만이 있을 뿐이다.

5
회사에 있으면 사무실의 일만 보이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휴가를 떠나면 온통 눈앞의 즐거움만 보인다. 사무실에서도 먼 곳의 즐거움을 느낄 줄 알고 먼 곳에서도 나의 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겨울 산을 보면 봄에 꽃이 필 것을 아는 것처럼 좀 더 지혜롭게 살고 싶다.

6
출근해서도 이런 평정심을 유지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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