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6
1
익숙한 침대에 몸을 눕히면, 아 여기가 내 집이구나 싶다. 남편과 나는 둘다 옆으로 누워서 자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어깨가 눌리지 않도록 아주 푹신한 침대를 샀다. 오사카의 단단한 침대에서 며칠 자다가 집 침대에 누우니 왈랑왈랑한 촉감에 행복했다. 옆으로 돌아누우니 어깨 깊이만큼 폭신하게 들어갔다. 아 이게 내 집이지!
2
사흘의 짤막한 여행이었지만 집은 빈집티를 팍팍 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불길한 냄새가 우리를 사로 잡았다. 정체는 한라봉 껍질이었다. 출발하기 전날 한라봉을 까먹고 껍질을 쟁반에 둔채로 집을 나섰다. 살림 초보인 나는 한라봉 껍질은 향기가 좋으니까 늘어놓고 가도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라비틀어진 껍질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집을 떠났다. 하지만 웬걸. 한라봉 껍질은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초록 곰팡이가 생기고 날파리가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3
돌아온 날 저녁엔 피곤해서 처리할 엄두가 안났다. 랩을 여러겹 씌워서 일단 허겁지겁 처리를 했다.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쓰레기는 모두 남편의 몫이다. 집에서 일어나는 험한 일은 대부분 남편이 하고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다. 남편도 눈과 코가 있으니 괴로운 건 마찬가지 일텐데.
4
소화불량이 심한 우리 부부는 여행 내내 소식을 했다. 쿠시카츠도 먹고 타코야끼도 먹고 돈가스, 소바 등등 많은 걸 먹어제꼈지만 늘 일인 분 정도만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적게 이것저것 많이 먹고 다녔는데 하루 이만보씩 걸었더니 포풍 소화능력이 좋아졌다. 갑자기 대식가 모드가 되어서 오늘도 퇴근길 내내 배고프다고 노래를 불렀다. 집에 오자마자 당근과 감자, 버섯을 썰어넣고 일본 카레를 만들었다.
5
급하게 밥을 해서 양껏 먹은 뒤 빈집에 사람냄새를 불어넣었다. 사흘간 사람이 없었던 집인데 왜 온사방에 머리카락이 있는 걸까. 열심히 청소기를 돌려서 머리카락을 없앴다. 아무도 안썼지만 왜인지 지저분한 화장실 바닥에 세제를 문지르고 물을 끼얹었다. 카레냄새 가득한 집 환기를 하고,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를 깨끗이 해치웠다.
주말에 했어야 할 빨래도 돌렸다. 남편과 빨래까지 열심히 넌 뒤에 거실 바닥에 널부러졌다. 하아, 이제야 끝났네. 사람 사는 집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