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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자의 반의어

D-77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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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듣기 싫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이런 정신병자들 다 격리시켜야 돼. 최근 모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였다는 기사를 보고 누군가가 한 말이다.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정신병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하기 힘든 흉악한 일을 누군가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있다. 그래도 저런 말을 들으면 뭔가 답답해진다. 정신병을 앓은 사람으로서 서글픈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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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강남역 화장실 살인 때도 그랬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불러온 처참한 일이었다. 나는 친오빠에게 일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여성 혐오가 위험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빠는 살인범이 정신병자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정상적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오빠가 그렇게 말하자 더 화가 났었다. 네 동생인 나도 정신병자고 정상 아닌 사람 세상에 많아. 정상인 사람은 다 멀쩡하니까 정신병자는 빼고 이야기하자,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오빠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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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느 날 지하철에서 쓰러지기 전까지, 쓰러지던 순간의 1초 전까지 정상인이었다. 그리고 쓰러진 순간부터 정상인이 아니고 정신병자가 된 것이다. 나는 정신병자를 폄하의 의미로 쓰지 않는다. 정신병자는 감기 걸린 사람과 같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감기 걸린 사람을 비정상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 정신병자의 반대말로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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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고등학생이 중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있었다. 칼로 훼손해서 변기에 내렸다던가. 무튼 기사만 보고서는 대체 어떤 방식의 훼손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간혹 이런 사건을 접할 때 나는 인간성의 상실에 대해서 생각한다. 범인은 부모님이 없고 할머니와 함께 컨테이너 같은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나는 운이 좋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부모님을 만나서 적당한 인간성을 기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을 뿐이다. 최근 폭행으로 사망한 초등학생이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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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진단을 받기 전에 많은 질문에 응답했다. 질문은 종이에 적혀있는 것도 있고 의사가 직접 물어보는 것도 있다. 그중에 엄청 공감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패닉이 왔을 때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순간적으로 이 공간을 탈출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생겼던 것이 기억났다. 왜냐면 지하철 문을 보는 순간 창문을 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내가 정말로 창문을 깼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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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문이 열렸기 때문에 창문을 깨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만약에 거기서 창문을 깨려고 했다면 사람들이 내가 1분 전까지 정상인이었다는 걸 알았을까. 날 때부터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간혹 지하철을 탈 때 노약자 석의 그림을 보면서 생각한다. 거기에는 지팡이를 짚은 사람도 있고, 배가 나온 사람도 있고, 어린이 그림도 있다. 하지만 공황장애 환자를 의미하는 그림은 없다. 공황장애 환자는 패닉이 오면 과호흡으로 기절한다. 과호흡으로는 죽지 않지만 뇌진탕으로는 죽을 수 있다. 그래서 공황장애 환자는 머리를 낮은 곳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자리를 양보받을 필요가 있다. 노약자 석에 공황장애 환자 표시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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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공황상태를 종종 겪을 수는 있다. '장애'라는 말이 붙을 때는 그것이 일상생활에 저해가 될 만큼의 방해를 줄 때이다. 우리는 신체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블록의 돌기나 소리를 이용해서 인지할 수 있게 하고, 휠체어를 탄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정신질병이 없는 사람들이 정신병자를 너무나 간단히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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