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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

D-79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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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가 노래를 부른다. 카혼이 챠카챠카 소리 낸다. 전기 기타가 재앵재앵 울린다. 와 이거 너무 좋다. 나도 연주하러 가고 싶다!


2

첫 합주는 바이올린이었다. 내가 다니는 바이올린 학원은 수강생이 많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레슨 시간 외에 합주 시간이 따로 있었다. 나는 바이올린은 그렇게 잘 켜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제 2 바이올린 파트를 주로 맡았다. 1 바이올린을 맡은 애들이 확실히 뽀대가 났다. 1 바이올린은 가장 주요한 멜로디를 연주했다. 가장 용맹한 선두 부대 같았다. 빛나는 갑옷을 입고 가장 날 선 칼을 가진 전사 같다고 해야 하나. 선율은 날카로웠고 비브라토도 화려했다.


3

그 선율을 듣는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 들어간다. 제 2 바이올린의 매력은 그런데에 있다. 그림의 바탕을 채색해서 작품을 완성하듯이 빈 부분을 채운다. 그것이 채워지는 순간 곡은 갑자기 웅장해진다. 그래서 나는 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다. 집단 안에서 나는 대부분 경쟁적이었다. 언제나 가장 좋은 집단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오케스트라에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음악은 평화로운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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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파트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한 몸이었다. 악보에 맞춰서 다 같이 커졌다가 다 같이 작아졌다. 그리고 다 같이 줄을 뜯기도 하고, 다 같은 팔 동작으로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그럴 때 느껴지는 짜릿짜릿함이 있었다. 다 같이 살금살금 켜다가 모두 같이 커질 때. 더 이상 활을 쓰지 못할 정도로 가장 크게 켤 때 모두가 힘을 합쳐 커다란 거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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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음악 듣는 취향도 없으면서 재즈 동아리를 기웃거린 건 그런 추억 때문인 거 같다. 나는 동아리에서 드럼을 쳤다. 그런데 사실 드럼 세트에 앉아서 드럼을 치는 적은 거의 없었다. 동방에 가면 남들이 합주하는 걸 구경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이 특히 멋졌다. 그네들은 노래를 듣기만 하고도 코드를 따고 악보를 그려주었다. 아무렇게나 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나는 마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잼을 하는 사람들은 같은 부분을 연주하고 또 하고 또 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합주에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은 궁시렁 거리고 욕을 하면서도 이어지는 선율을 따라 연주하고 또 했다.


6

김윤아가 노래할 때 나오는 아우라가 엄청나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육성으로 와 너무 멋있다, 하고 뱉고 말았다. 나도 다시 악기를 연습해서 합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치면 죽기 전에는 어떤 악기 하나쯤은 내 몸처럼 다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걸 들고 자유롭게 사람들이랑 함께 연주하고 싶다. 같이 웃고 떠들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치고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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