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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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때 오빠와 둘이 이모네를 찾아가곤 했다. 이모네는 잠실이었는데 잠실역은 너무 크고 출구가 많아서 지하에서 헤매기가 일쑤였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표를 찍고 나가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지하에서 뱅글뱅글 돌곤 했다. 지하는 상점가였는데 옷이며 화장품을 파는 가게가 모두 엇비슷해서 헤매면서도 여기가 아까 온 데인지 아닌지 계속 헷갈렸다.
2
학창 시절 내가 살았던 지역은 2호선의 지선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신도림에서 열차를 갈아타야만 했다. 신도림역은 사람도 많고 또 환승 가능한 라인이 많아서 이 역시 무척 헷갈렸다. 지하철을 자주 타게 되면서는 내리는 곳과 환승경로가 눈에 익어 더 이상 헤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하철에 익숙한 어른이 되자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게 되어 지옥철을 경험하게 되기도 했다.
3
늘 2호선만 주로 타다가 이사를 가면서 노선마다 특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동대문과 청량리 근처의 1호선을 타면 갑자기 고객 연령대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할머니들은 대개 큰 가방이 달린 수레를 끌고 지하철을 탄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큰 소리로 특정 후보를 홍보하고 다니는 아저씨들도 많다. 그럼 꼭 거기에 조용히 하라고 말을 섞으며 싸우는 승객이 있었다. 친구 하나는 1호선에 이상한 사람이 많다며 '변태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4
신분당선을 타는 사람들은 대개 젊다. 아침에 판교로 향하는 신분당선에는 노약자가 없어서 노약자석이 텅텅 빈 채로 가는 경우가 많다. 또 무인 운행되는 열차로 맨 앞칸이나 뒤칸에 타면 열차 정면과 후면을 차창밖으로 볼 수가 있다. 맨 뒷칸에서 멀어지는 선로를 멍하니 바라보면 내가 늘 타던 지하철 풍경과 달라서 신선한 느낌이 든다. 물론 요금도 신선한 충격이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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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에서 시댁과 친정은 거리가 비슷하다. 하지만 시댁은 서울이라 가는 길이 항상 막히고 친정은 경기도라 안 막혀서 빨리 갈 수 있다. 차도가 막혀버린 서울에서 지하철은 너무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날아서 다니는 드론 택시가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그러겠지 싶다. 부동산에 밝은 선배는 나에게 집에 대한 수요는 향후 20년까지는 유효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30년쯤 후에는 달라진 교통수단과 함께 좀 다른 거주 선택을 할 수 있게 될까. 지하철 이야기로 시작해서 집 이야기로 끝나다니, 나도 퍽 기성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