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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는 일상

D-81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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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본 적 없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물론 그런 생각에는 호주에서 살았던 일 년의 좋은 기억이 큰 원동력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크다. 힘든 일도 있겠지만, 힘든 일이 없으면 지루해하곤 하는 성격이라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하다.


2

그래도 마음 한켠에서는 불안하다. 이제 나이도 있는데 사서 고생하기엔 늦은 거 아닐까. 또 예상하지 못한 곤란에 빠지면 어떡하지. 인종 차별당하면 어쩌나. 일 년짜리 비자를 받아서 만기가 있는 타지 생활을 했던 거랑은 무척 다를 것이다. 어디든 늘 자가용을 몰고 다니고, 무거운 마트 장보기는 쓱배송으로 해결하는 편리한 일상과도 작별해야 할지도 모른다.


3

오늘은 런던 여행을 준비했다. 값비싼 런던 숙박비를 보다가 런던에서 집값으로 돈을 많이 탕진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친구는 벌써 삼 년이 넘게 런던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지은 지 백 년이 넘은 주택에서 산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나를 만나면서 친구는 집에 도둑이 들지 않았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래 집을 비우는 게 불안해서 친구들에게 집을 방문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친구들이 집에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는 것이다. 도둑이 빈집인지 아닌지 간을 보려고 한 것 같다며 친구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요즘 같은 세상에 집에 도둑 들까 봐 걱정하는 거 정말 웃기지 않니? 하고 웃었다.


4

최근에 남편의 동생네가 강원도로 이사를 했다. 설악산도 바닷가도 모두 가깝다고 한다. 물론 거기로 이사한 데는 아기의 아토피도 한 몫했다. 강원도 일층 집으로 이사한 조카는 상당한 우량아로 집안을 쿵쿵거리며 활보하고 있다. 마음껏 뛸 수 있어서인지 환경이 좋아서인지 조카는 희고 매끈한 피부로 미모를 과시하고 있다. 사는 곳을 몇 시간만 이동해도 가족의 일상이 이렇게 달라진다.


5

지금과 다른 일상을 꿈꾸기 시작하니까 현재 일상들에서 약간 마음이 떴다. 특히나 요즘같이 삼일에 한 번은 시야를 뿌옇게 막아버리는 공기가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음이 끌리는 일들을 발견해도 어지간하면 마음을 접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뾰족하게 어딘가로 가고 싶은 곳, 혹은 내 마음을 끄는 일은 아직 없다. 그래서 더 붕 뜬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붕 떠도 내일 출근하면 다시 오토모드로 일하고 있겠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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