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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3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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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회사에서는 업무툴로 아지트를 쓴다. 입사는 오년 전이었는데, 생소한 업무툴이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생긴 건 약간 페이스북처럼 생겼다. 사람들이 일하면서 발생한 대화들이 거기에 모두 적혀있다. 업무 별로 그룹이 있어서 다른팀 그룹도 있고 내 팀 그룹도 있고 그렇다. 오년 전만해도 사람이 사오백 명 될 때라서 입사하면 모든 그룹을 다 보게 하는 것이 디폴트 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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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인즉 입사하자마자 이백개 정도 되는 그룹에 초대된다는 의미이다. 거기에 있는 정보를 모두 읽기도 어렵고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쓰레드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나를 멘션한 경우 알림이 온다. 그것만 다 쫓아가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회사에는 대부분 경력직 입사자들이 들어왔는데, 생경한 업무툴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아지트 때문에 멘붕이 온다는 말이 우리팀에서 많이 회자되는 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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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리더는 입사 다음 날 나에게, 신규입사자 웰랜딩을 업무로 맡겼다. 루시가 신규입사자니까, 신규입사자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잘 알 거라 적임자라고 했다. 나 또한 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경력자라서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아지트를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아지트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말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사람들이 구어체로 적어둔 업무 히스토리는 누군가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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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신규입사자 자기소개 그룹이었다. 거기에는 일정 양식으로 저는 누구고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라는 이야기들이 써져있었다. 나는 그 그룹의 자기소개를 며칠에 걸쳐서 끝까지 다 읽었다. 댓글에는 주량이 거짓말이라느니, 그런 놀림이 적혀있기도 했다. 그걸 다 읽고 나니 회사 사람들이 대부분 친근하게 느껴졌다. 간혹 일하다 그 소개의 주인공을 만나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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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아지트의 기능도 형태도 많이 변했다. 그 변화들을 따라 가면서 내 아지트도 오년의 나이를 먹었다. 다음 카페를 쓰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카페를 가입해서 사용하듯이 아지트도 그렇다. 똑같은 툴을 쓰지만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환경은 모두 다르다. 내가 사용해 온 아지트의 환경을 둘러보면서 세월의 흔적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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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갖는다. 남이 모르는 정보를 빨리 알 수록 정보 비대칭성이 커지고 거기서 힘이 생긴다. 그게 뭔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어떤 경우 왜 비공개인지 모르겠는 정보가 비공개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업무상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가 비공개 일 때도 있었다. 아지트는 그런 부분을 줄여서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업무 도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멋진 모습으로 발전해서 많은 회사가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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