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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택배를 찾아서

D-84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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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찾으러 갔다. 택배보관실 직원은 'C동'이라고 적힌 파란 파일을 펼쳤다. 벌어진 파일은 흰 속지를 날름 내놓았다. 한두 번 넘긴 종이 자락이 아니었다. 많은 넘김질에 적당이 구깃해진 종이가 찰박찰박 소리를 냈다. 여러 장을 넘겼는데도 우리 집 호수가 보이지 않았다. 없는 것 같은데요? 문자 받으셨어요? 직원이 우리 착오가 아닌지 연거푸 물어왔다. 하지만 난 우체국 아저씨와 통화까지 한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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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럽게 종이장을 몇 번 더 넘기자 우리 집 호수가 나왔다. 아 여기 있네요. 직원은 겸연쩍은 목소리로 말하며 사인을 하라고 했다. 남편이 수령자 칸에 이름을 적고 사인을 했다. 직원은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택배를 찾기 시작했다. 엑셀에 입력하면 커맨드 f를 누르면 바로 찾아줄 텐데. 책상 위에 멀쩡히 컴퓨터가 있는데 저렇게 파일에 적어야 하나. 하루에 한 동만 해도 A4 용지 몇 장 분량이나 택배가 쌓이는 곳에서 택배대장을 손으로 적고 눈으로 찾는 시스템이 무척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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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찾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 사이 사람이 네 명이나 더 왔다. 마지막에 온 두 사람은 비좁은 공간에 들어오지 못하고 유리문 밖에 서서 기다렸다. 우리 바로 다음에 와서 기다리던 사람은 한참을 기다리다 창고로 목을 내밀고 말했다. 제 택배 저기 앞에 보이는데 먼저 가져가면 안 될까요? 기다리다 못해 결국 눈으로 택배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 사람이 택배를 가져가고 나서도 직원은 한참이나 더 우리 택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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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직원은 찾는 걸 포기하고 더 찾아본 뒤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해외에 있는 분이 선물로 뭔가를 보내주신 터라 우리는 그 택배가 박스인지 비닐봉지인지 알 길도 없었다. 우리가 좀 찾아보겠다고 말한 뒤 창고에 가서 한참을 봤다. C동 택배는 한 구역에 모아놓는데 거기에 우리 집 호수가 적힌 박스는 없었다. 결국 C동 물건이 다른 동에 가있던가, 아니면 C동 구역에 다른 집 호수가 적힌 채로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송장에 적힌 수신자와 일일이 비교해 볼 수는 없어서 찾으면 알려주세요, 하고 보안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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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운전을 하고, 바둑을 두고, 고객문의 사항도 받아주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 곳곳에는 아직 사람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들이 많다. 택배 도착과 수령을 기록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더 싸기 때문에 우리 건물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집은 예쁘게 만들어놨지만 보안실 책상과 의자는 고물상에서 주워온 것 같은 몰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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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향한 기술이네 뭐네 하는 말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한 활동에 그럴 싸한 광고 카피만 얹은 거 아닌가. 갑자기 염세 돋는다. 보안실에서는 지금까지 연락이 오지 않는다. 일본에서 온 귀한 택배인데 받을 수는 있을까. 도쿄에서 송파구까지 왔는데 정작 지하에서 우리 집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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