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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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팀원들과 핫도그를 먹었다. 핫도그를 우물우물 먹으면서 이런저런 푸념 비슷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반포에 삼십 평 아파트는 삼십억 정도 한다고 한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린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많이들 보낸단다. 누군가는 어린이집 방학에 아이를 할머니 댁에 보냈는데, 개학하고 보니 아이 반에 국내에 있었던 애가 자기 아이밖에 없어서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돈이 많으면 돈 많은 커뮤니티 안에서 또 그만큼 써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뒤쳐지는 것 같아 불안해지는 사회. 누군가 한국은 부자가 살기 좋은 동네라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어지간한 부자도 마음은 가난해지는 사회가 여기인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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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가까이서 부자를 볼 기회도 있었다. 검색창에 이름을 검색하면 프로필이 딱딱 나오는 사람들. 또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부자 순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인생이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잘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러기 어려운 상황인 것도 보았고, 또 생각지 못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물론 나는 부자의 일상을 모른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좋은 것들이 많을 테고 그런 것들을 그들은 모두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 삶에도 부족함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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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정말 많아지면 유명해지겠지. 그럼 가족이나 친구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올 것이다. 누구는 빌려주고 누구는 안 주면 인심을 잃을지도 모른다. 부자들에게는 돈 빌려주는 정책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늘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하지만 그래서 얼마를 원하는데, 하고 물어보면 욕심은 끝이 없다. 이명박도 최순실도 돈이 많았는데 더 많이 가지려고 애썼다. 그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돈의 속성은 그런 것이 아닐까. 많으면 많을수록 더 목말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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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값이 계속 오른다는 걸 지금 사는 동네에서 겪으면서 집을 빨리 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급한 마음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나는 평소 장을 볼 때도 휴가를 떠날 때도 돈이 아쉬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집을 사려고 하자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돈의 액수는 일이천만 원이 아니었다. 일이억이었고, 일개 근로자가 그런 돈을 뚝딱 마련할 방법은 없었다. 한참을 집을 알아보다가 문득 집을 사려고 한 순간부터 내 마음이 가난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 사는 곳에 만족하고 있고 이 정도 전세는 또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집을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만 같고 그래서 집을 사려고 하니까 돈이 없고. 나는 잃은 적 없는 돈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며칠 동안 부동산 페이지를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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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주일을 지내니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가계를 잘 운영해보겠다는 생각까지는 좋은데 마음이 가난해질 필요는 없었던 거 아닐까. 집을 살만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냥 또 전세로 가면 그만이다, 생각하니 다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내가 이 말을 직장동료 사이인 남편에게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자기도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얼른 행복이란 빵을 화덕에 구워낼 수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 꾸린 가정이다. 둘 다 갑자기 어디 홀렸던 사람인 양 화들짝 정신을 차린 뒤 키득키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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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엄마가 해준 반찬이 두둑하다. 주말에 엄마 반찬으로 밥 해먹을 생각을 하니 뱃속부터 두둑한 행복이 느껴진다. 특별히 바쁜 일정이 없어서 남편과 노닥노닥할 생각으로 주말을 시작하려 한다. 내일 아침에는 침대 위 덮고 베는 모든 것들의 껍데기를 빨래할 예정이다. 주말 스케줄은 무슨 계획을 세워도 다 신난다. 그게 가사 노동이어도 신이 난다. 잘 사는 건, 그냥 이런 거 아닐까. 힘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그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 그런 삶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바라는 잘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