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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도 등수를 매겨

D-87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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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로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쓴다. 글의 말미에는 에라 모르겠다, 라거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라는 식의 내용이 적힌다. 의지와 무관하게 시간이 흐르니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다면 그저 살기만 하면 된다. 기대와 희망이 없다면? 그럼 정말 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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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래퍼를 보는데 하온이가 병재에게 말한다. 너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그 말을 듣는데 퍽 걱정이 되었다. 나에게도 그런 지인이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그런 경우에 조금만 버텨달라는 그런 말이 나오게 되는 거 아닐까. 그 사람에게 감히 내가 희망을 줄 수도 섣부른 위로도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말. 조금만 더 버텨줘, 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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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와 병재가 콜라보 무대를 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다크한 기운이 어울리기도 하는 조합이었다. 그 둘의 랩을 들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쉽게 불행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제 유명인이 된 그들에게 왜 여전히 불행하냐고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른다. 몇 시간을 꾸미고 잠깐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스타들. 또 그들을 더 잠깐 텔레비전으로 보는 사람들. 그 찰나의 순간에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그들이 해야 할 행동을 정해버린다. 그리고 그 행동의 틀에서 벗어나면 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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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영화에는 삐딱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 아니면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 파괴하려고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대체로 악당이 된다. 그래서인지 사회는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을 잘 수용하지 않는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라는 말은 칭찬이고 매사에 부정적이다, 라는 말은 욕이 된다. 하지만 요새는 그런 프레임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병재와 원재의 랩에 사람들이 열광하니까. 뭔가 찜찜한 곳을 시원하게 닦아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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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불만도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어떤 방식이냐에 따라 악당이 될 수도 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어제 채널을 돌리다가 '상사三끼'라는 프로그램을 잠깐 보게 되었다. 직장 상사에게 불만을 품은 회사원이 집에 와서 닭개장을 끓여 먹는 것이 핵심 스토리다. 조리를 하는 과정이 회사 생활 에피소드와 겹쳐서 나온다. 바보 같은 과장을 생각면서 닭 머리를 손질하고, 회의하다 정말 빡칠 때 국이 끓어 넘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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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직장생활 스트레스와 퇴사 관련 서적이 출판계를 휩쓸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그런 불만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는 만큼 회사원들도 어떤 사각지대에 놓이는 듯하다. 안정적인 직장일수록 절대 발을 뺄 수가 없는 늪이 된다는 걸 종종 느낀다. 내가 지금 느끼는 생각과 고민들도 언젠가 문제를 푸는 열쇠로 작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역시 오늘 일기도 희망적으로 끝나고 있다. 난 병재처럼 되긴 글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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