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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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도서관에 가면 항상 하는 망상이 있었다. 넓은 도서관에 자리 하나 없이 빼곡히 들어찬 학생들이 모두 조용히 책만 보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이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조용한 도서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갑자기 학교를 어슬렁 거리던 개가 들어와서 막 짖으면 어떨까. 아니면 누군가 이동식 스피커를 어깨에 떠매고 와서 신나게 춤을 춘다면? 아니면 도서관 천장에서 사람 머리가 뚝, 하고 떨어진다면? 역시 아수라장에는 공포물이 짱이야 그게 젤 쎈거 같아, 하고 혼자 결론 내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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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생각들은 떨어지는 폭포물 같은 것이어서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생각 뒤에 대답이 오고, 바로 다음 생각이 이어 붙는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도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10분이고 20분이고 금방 까먹게 된다. 아 공부해야 돼, 라는 마음속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런데 스피커에 무슨 노래를 틀면 도서관이 다 같이 흥겨워질 수 있을까' 하고 선곡을 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3 (소설내용 스포주의)
소설 <적의 화장법>은 남자가 포마드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남자들'이 아니고 '특정 남자'가 아니며, 그냥 '남자는'으로 시작한다. 독자는 이 텍스트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롬 앙귀스트와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두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나는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이름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아멜리 노통브는 이 인물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 많은 시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이 인물이 자신의 이름을 설명하는데 장문의 대사를 부여한다. 'text'라는 말의 기원과 함께 장황하게 설명되는 텍스토르 텍셀은, 그러니까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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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년 전 나는 정신과에서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 쓰러졌을 때는 다시 정신 차리고 출근해서 한의원에 갔었다. 두 번째에는 폐가 이상한 것 같다며 내과를 갔다. 내과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나에게 정신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토록 정신병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의사는 나에게 두터운 질문지를 풀어오게 하고, 또 직접 여러 가지의 문항을 물어 답변을 확인한 뒤 나에게 광장공포와 폐쇄공포를 동반한 공황장애라고 진단해주었다.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 엑스레이를 찍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피 뽑아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도 내가 공황장애라는 증거가 없는데,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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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앙귀스트는 텍스토르 텍셀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텍스토르 텍셀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제롬이 절대 대답하지 못하게 만들어 제압하거나, 제롬이 흥미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꺼내어 대화를 이어간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수준 이상으로 긴밀하다. 이것 때문에 나는 소설을 읽다 이 둘이 같은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는 자기로부터 살인자라는 죄의식을 떼어낸 제롬이 다시 죄의식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기다란 주문이자 협상과정이다. 혹은 그 둘을 하나의 사람으로 합치는 긴 증명문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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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후로 나는 숨 쉬는 것이 의식되어 견디기 힘들었다. 지하철에서 호흡곤란이 문제였는데, 버스에서도 그렇고 터널에서도 그랬다. 영화관에서도 그랬고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랬다. 이러다 내 방에서도 패닉이 오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금방 폭포로 변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닳아진 칫솔을 보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공황장애에 걸렸나 생각했다.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다가 내가 최근에 로션을 바꿨는데 이것 때문에 걸렸나 생각했다. 불을 끄고 누우면 숨을 자연스럽게 쉬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쉬었다. 들이마셔야지, 이제 내뱉어야지, 하면서. 이러다 잠들면 숨을 쉬지 못해서 죽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자꾸 일어났다. 앉아서 잠드는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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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과 텍스토르라는 두 이름으로 불리는 한 남자는, 아마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의 폭포로 들어서는 입구를, 혹은 그 입구로 향하는 이정표를 아멜리 노통브는 '화장법'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었을까. 끝내 남자는 '자유'를 외치면서 스스로 죽고 말았다. 그건 아마도 '적'의 화장법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안의 적은 언제고 나를 죽게할 수 있다. 그리고 항상 적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라난다. 제롬은 끝까지 텍스토르 텍셀이 완전히 자기일 거라고 믿지 못했다. 적은 그토록 은밀하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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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나는 내가 왜 공황장애에 걸렸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나에게는 특징적인 불안도,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 후로 몇 년간 나를 돌보면서 나는 스물다섯까지의 내가 얼마나 나에게 관심이 없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받는 상처나 치유의 과정에 대해서 한 번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리가 아픈데 멍이 든 건지, 부러진 건지, 아니면 무릎 밑이 잘려나가서 그 단면이 아픈 건지, 한 번도 아픈 부분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나를 본 적이 없으니 왜 아픈지 알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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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래도 전보다는 나를 돌볼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은밀한 적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혹시 예전의 나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을 잘 돌봐야 한다고. 난 멋져 보여, 괜찮은 것 같아, 이런 말은 아무것도 돌봐주지 않는다. 상처나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 부분의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잘 보고, 어디를 어떻게 건드리면 아픈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무는지 그대론지 더 커지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나를 돌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