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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닭집에서

D-92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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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닭의 매력은 짭짤한 간이 밴 감자와 당면이다. 오늘도 나는 닭은 먹는 둥 마는 둥 감자와 당면을 집중 공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최근 며칠 사이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낑낑 당겨야 빠지는 당면을 가위로 조금씩 끊어내면서 이야기들을 들었다. 두어 번 먹던 손길을 멈추게 하는 대목이 등장했다. 잠시 망연자실하다가도 다시 먹었다. 그 접시를 다 먹고서 볶음밥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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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을 먹으면서는 내가 질문을 했다. T는 회사를 왜 다니시나요? 그는 자신이 만든 서비스를 쓰는 사용자들에게 부채의식이 있다고 했다. 마치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이라서 그 빚을 갚기 위해서 다닌다고 했다. 지금도 자신이 생각하는 별로인 부분을 열심히 고치고 있단다. 옆에 있는 C에게도 물었다. C는 회사를 만들어준 사람에게 빚을 진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의 가족을 회사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현재의 생활이 감사해서 왠지 그런 기회를 만들어준 이 회사를 만든 사람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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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T도 나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월급 받고 그에 합당한 일을 하면서 회사 다니는데 누가 누구한테 빚을 져. 나는 C나 T나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백 명을 만나서 왜 회사 다니는지를 물으면 백 가지 이유가 나올 거라고 하면서 다 같이 웃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계속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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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불쾌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오늘의 대화가 분명 내일을 버티게 하는 힘이 돼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회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여기서 좀 더 일하고 싶고,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의 목격자가 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데 집중해야지. T가 말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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