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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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사람들과 종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종전이 되면 이제 기차 타고 유럽 갈 수 있는 걸까. 평양냉면 먹으러 가고 싶다. 종전되면 일산이랑 파주 땅값이 엄청 오를 거다. 일산이 은근 집값 되게 안 오르는 거 알아?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고 팀원 중 누군가가 저녁에 기사 몇 개를 던져 주었다. 종전 이슈로 대북주가 엄청 오르고, 양주나 파주 땅값이 출렁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거 봐, 내 말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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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이 될지 안될지 알 수 없는데, 기회 속에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벌써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종전은 그냥 다 북한의 연기일지 모른다고 외치는 사람들 중에도 누군가는 대북주를 사고 북쪽의 땅을 알아봤을지도 모른다. 신념은 신념일 뿐이고, 돈은 사람들의 마음이 쏠리는 쪽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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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에 사는 지인이 자기 동네 전셋값이 엄청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내가 사는 송파구는 전셋값이 이십 프로나 떨어졌다고 한다. 송파구에 올 연말에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세대가 거의 만 개에 가깝다. 집이 만 개라니. 그 단지는 분양 가격에 몇 억의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되고 있었다. 프리미엄을 내고 분양권을 산 사람 중에서는 집 값은 전세보증금을 받아서 내야지, 생각한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 전세 매물이 벌써부터 이백 개가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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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대도시의 부동산 시장이라는 게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최근 국내 대기업의 부동산 자산이 너무 늘어나 문제라는 뉴스도 있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은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대출과 전세보증금을 끼고, 부동산을 사고 있다. 오늘 막히는 강변북로를 천천히 달리며 여기 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우리는 집을 못 가졌다는 말을 하자, 남편이 대답했다. 한 사람이 왕창 가지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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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회적 기업으로 이직한 친구가 말했다. 컨설턴트로 일할 때 알던 동료들이 결혼을 하는데 다들 칠억짜리 아파트 전세를 들어간다고. 그걸 보면서 나와 그들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친구는 흐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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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중반의 동료는 자기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집 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어차피 못 사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집 값이 일 년 연봉보다도 더 많이 오르는데, 그런 시간 속에서 월급을 쪼개 저축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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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입장에서 전세보증금이 내리면 좋긴 하지만, 어렵게 돈을 마련해서 집을 산 사람들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니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다. 갑자기 오르는 대북주나 미국보다 더 심하게 출렁거리는 비트코인 가격, 일 년에 이억이나 올라버린 회사 근처 아파트 단지. 모든 것들이 쉽게 돈 벌고, 더 많이 벌려는 사람들의 탐욕이 반영된 것 같아서 안타깝다. 변동하는 가격 폭이 사람들 욕심의 크기를 합친 것 같다. 나부터라도 그런 일에 필요 이상 집착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