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었다. 언제나처럼 기상 데드라인에 눈을 뜬 나는 번개같이 출근 준비를 했다. 밥은커녕 주스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다. 나는 경기도에 살았는데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는 열차는 십 분에 한 대씩 왔다. 이번 차를 놓치면 지각이었다. 나는 매일 타는 그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달렸다. 달릴 땐 항상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딱 삼 분만 일찍 일어났으면 안 뛰어도 되는데, 조금만 일찍 일어날걸...
열심히 뛴 보람이 있어서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내가 타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사 다시 삼 번 문. 그 문으로 내리면 이호선으로 갈아타는 계단 바로 앞이다. 앞을 막는 사람이 없으니 다람쥐처럼 계단을 내려가서 얼른 환승할 수 있다. 환승하기 좋은 칸이라 늘 사람이 많지만 그 정도 불편함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뛰와서 그랬는지, 날이 따듯해지고 있어서 인지, 사람이 많아서인지 무척 더웠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공간에 끼여서 땀을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느낌이 무척 좋지 않았다.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급하게 겉옷을 벗었다. 얼굴이 차가워졌다. 상반신에 혈액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목덜미에 땀이 맺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들이마셨는데, 전혀 들이마셔진 느낌이 나지 않았다. 마치 진공 공간에 놓인 것 같았다. 이 공간에 공기가 없다. 숨을 쉬어야 해. 극도로 갑갑한 상태에서 시야에 열차 문이 보였다. 문에 있는 창문을 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을 향해 나가려고 하는데 문이 열렸다. 그쯤 의식을 잃었는지 앞으로 쓰러졌다.
2호선으로 갈아타는 환승역이었다. 바로 앞에는 환승 통로가 있었는데 내가 열차 문 앞에서 쓰러진 것이었다. 쓰러지면서 팔을 뻗어 앞을 받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대역죄인처럼 절하고 있는 나를 두고 사람들의 무리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들은 빠르게 환승통로로 사라졌다. 내 뒤로 열차 문이 닫히고 사람들도 사라졌다. 나는 앞에 보이는 벤치로 기어가 누웠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와 중에도 여기 이렇게 이상하게 누워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일어나서 앞으로 가는데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작은 구멍이 뚫린 봉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앞이 깜깜하고 작은 구멍 크기 정도의 시야만 보였다. 하지만 늘 환승을 하던 길이라 익숙한 편이라 더듬더듬 화장실을 찾아갔다. 속이 메스꺼웠다. 몇 번 구역질을 해서 속을 게워내고 다시 이호선을 타러 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늘 맡던 향기와 늘 앉던 내 자리가 안정감을 주었다. 조금 전 지하철에서는 이승과 작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출근하니 괜찮아지다니. 회사원이 체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