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도 나는 자꾸 지구와 우주를 오가야 했다. 자꾸 진공상태에 놓여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우습게도 내가 겪은 우주는 모두 지하철 속이었다. 아무래도 폐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집 앞 내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내 폐가 정상이라고 했다. 지하철에서 숨을 잘 못 쉬는 건 아무래도 정신과를 가보는 것이 좋겠다며 대학병원을 추천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준 진료소견서를 들고 회사 근처 대학병원을 향했다.
병원 이정표에는 '정신건강의학과'라고 써져있었다. '정신과'라고 쓰면 뭔가 대단히 미친 사람이 가는 곳인 것 같아서 약간 고상하게 바꾼 건가. 병원 복도를 걸어가면서도 내가 왜 정신과를 와야 하는지 반감이 들었다. 아마 검사해도 별 문제없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었다.
보통 병원을 가면 몸속을 들여다보거나, 몸에서 나온 세포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친다. 대체로 몸속에서 뭔가를 채취하거나 혹은 촬영 기계 앞에 서게 된다. 하지만 정신과는 달랐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나에게 엄청난 양의 질문을 주었다. 나는 수많은 질문지에 응답하고, 어떤 질문지는 의사가 직접 가지고 나에게 물어서 작성하기도 했다.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을 잔뜩 가져간 뒤에 병원은 나에게 진단명을 주었다.
나의 진단명은 폐쇄공포와 광장공포를 동반한 공황장애라고 했다. 의사는 진단명을 주면서 나에게 물었다.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나요? 아뇨. 잠을 잘 못 자나요? 아뇨. 커피를 많이 마시나요? 아니요. 의사의 모든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최근 야근도 많이 하지 않았고, 특별히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다. 내 생활에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공황장애라니? 저는 공황장애에 걸릴만한 일을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 아무리 아니라고 도리질을 해도 내 병명은 바뀌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