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말했다. 뇌의 여러 가지 부분 중에 원시뇌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어요. 사람이 진화하기 전에 아주 예전부터 있었던 부분이죠. 위험을 느끼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차고 하는 것도 그 뇌가 동작하기 때문이에요. 만약에 방금 전에 차에 치일 뻔했다면 식은 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고 하는 것이 정상이겠죠? 다만 공황장애는 그런 위급한 상황이 아닌데 그렇게 뇌가 여기는 게 문제가 되는 거랍니다. 누구나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어요. 다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면 그걸 공황장애라고 부르는 거예요.
요즘 공황장애 치료약이 많이 나와 있다며 의사는 나에게 약을 주었다. 처음에 한 알로 시작해서 점점 양을 늘려서 다섯 알 정도 먹다가, 다시 점점 복용량을 줄여서 끊는 방식으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일단은 한 알을 줄 테니 먹어보고 병원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 위급 시에 먹을 수 있도록 신경안정제도 처방해 주었다. 신경안정제는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약통을 털어먹는 바로 그 약 이다. 처음에는 약이 잘 듣지만 먹을수록 내성이 생겨서 복용량을 점점 늘려야 하는 약이다. 만성이 되면 약통에서 와르르 쏟을 정도의 양을 먹어야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의사는 자주 복용하지 말고 꼭 필요할 때만 먹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진단과 약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서 양치질을 하는데 최근에 칫솔을 바꾼 것이 생각났다. 혹시 이 칫솔 때문에 내가 공황장애에 걸린 거 아닐까? 세수를 하고 방에서 로션을 바르는데 얼마 전에 스킨을 새로 바꾼 것도 생각이 났다. 이 스킨 때문에 공황장애 걸린 건가? 모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처음부터 안 해야 되는데, 자꾸만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나를 멈출 수가 없었다.
공황장애 걸리기 전까지는 잠을 잘 자고 있었는데, 진단을 듣고 나서 오히려 잘 못 잤다. 항상 방에 걸려있던 시계인데 초침 소리가 거슬려서 잘 수가 없었다. 벽시계를 떼서 거실 멀리 갖다 놓았다. 그리고 방에 다시 돌아와서 누웠는데 계속 초침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 있는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리가 없을 텐데 환청인가. 귀에 울리는 째깍째깍 하는 소리가 진짜일까 가짜일까 의심하면서 어설프게 자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 무렵 지하철을 아예 타지 못해서 엄마가 차로 출근을 시켜주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쩌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게 되면 두 시간이 걸렸다. 가방에는 항상 안정제와 치료약, 비닐봉지가 들어있었다. 불안하면 속이 메스꺼울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불안증세가 심해서 심장 언저리를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자리 양보를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내 상태를 보더니 일어나 주었다. 앉으니 훨씬 나았다. 하지만 자리양보를 부탁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곧 기절할 것 같은 상태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도와달라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회사를 다니는 게 의미가 있을까. 스물넷에 운전면허도 없이 엄마 차나 얻어 타면서 민폐 끼치고. 이게 뭐 하는 걸까,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두면 어떨까 이야기를 꺼냈다. 의외로 엄마는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만둬도 된다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결혼해도 꼭 자기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해 오던 엄마였는데, 엄마도 딸의 공황장애 때문에 무너진 걸까. 마음이 착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