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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o not panic

04. 공포가 바꿔놓은 것들 1

달라진 일과 휴가 계획

by Lucie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했을 때, 그럼 그만두고 뭘 할까 생각해봤다. 이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노랗고 동그란 알약을 매일 챙겨 먹는 것뿐이었다. 사람 많은 밀폐된 열차를 타는 시간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내가 평생 지하철을 안 타고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다시 타야 할 일이었다. 되려 이 따위 병 때문에 직장도 잃고 인생의 루저가 된 기분에 휩싸일 것 같았다.


다만 이 일을 계속하게 된다면, 나는 어제 매출을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건네는 인사는 안녕보다는 어제 매출 얼마였어, 라는 질문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던 일을 바꾸기로 했다. 입사하던 날부터 쓴소리 단소리 해주던 본부장은 시간을 내달라는 내 메신저에 이렇게 대답했다. 밑에 사람들이 시간 내달라는 말이 제일 무서워 나는.


본부장은 나의 인생계획을 듣고 코웃음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회사를 삼 년도 안 다닌 꼬맹이가 커리어 계획이 어쩌니 하면 웃길 수밖에. 하지만 건강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본부장의 얼굴은 심각했다. 공황장애는 연예인들이나 걸리는 병 아니야?라고 반문하며 놀라워했다. 저도 제가 이런 병에 걸릴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본부장은 두 번 묻지 않고 내가 희망하는 부서로 발령을 내는데 동의해주었다.




휴가를 떠날 때 더 이상 예산을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 멀리 가면 비행기 티켓이 비싸지니까 가까운 동남아 여행지를 선호했었다. 하지만 인생에는 시간제한이 있다는 걸 늘 상기하게 되었다. 워낙 튼튼한 편이라 한 번도 기절을 해본 적이 없어서 공황발작으로 의식을 잃을 때 죽는다고 생각했었다. 모아 놓은 돈 써보지도 못하고, 무려 월요일 출근길에 죽다니! 희미해지는 마지막 기억은 그런 억울한 느낌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가고 싶은 데는 가야지, 생각하자 거기에 드는 교통비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여행 역시 공황장애 환자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긴 했다. 일단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가 문제가 된다. 안정제와 안정이 되는 음악을 챙겼다. 소지하고 있는 물이 떨어지면 절대 안 되었기 때문에 보안검사대를 통과하고 나서 꼭 생수를 샀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혹시나 도움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니, 내 병명을 영어로 찾아보았다. 공황장애는 영어로 panic disorder였다. 패닉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진짜 패닉이 뭔지 모른 채로 그 마을 쓰고 있었네. 의외로 친숙한 단어가 튀어나와서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도 발작이 와서 '패닉 디스오더'라고 말조차 못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었다.


비행기를 탈 때 창가나 복도 쪽이 아니면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공황장애 환자라서 꼭 그런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승무원에게 사정하면 안 될까. 찾아보니 비행에 문제가 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승객은 승무원이 승차거부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너무 아픈 척 해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 비행기에서 가장 불안할 때가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다. 아직 비행기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짐을 내리기 시작한다. 통로가 막히고 기내 전체가 붐빈다. 나는 그때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 음악을 듣는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튼 뒤 여행책이나 핸드폰을 본다. 앞을 보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 고개를 들면 모두가 내린 뒤다. 한적한 기내에서 천천히 내 짐을 챙겨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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