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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o not panic

06. 세 종류의 사람

by Lucie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 걸릴 것 같은 사람, 안 걸린 사람.


처음 공황장애에 걸렸을 때는 나만 몹쓸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이 병 때문에 지하철도 못 타고, 스위스에 터널을 통과해서 올라간다는 산악열차도 못 타고, 스쿠버 다이빙도 못하고. 모두에게 가능한 활동인데 나만 못하네, 하는 마음에 굉장히 이상한 병에 걸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위로를 건넸다. 너랑 너무 안 어울리는 병이야. 항상 긍정적이고 잘 웃는 네게 공황장애라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 사람은 정말 정신이 건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사람들은 정신질병에 대해서 상당히 모른다. 기절하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은 출근을 하는데 자꾸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패닉의 전조 증상이 계속 나타나서 결국 중간쯤 가서 출근을 포기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타러 나가는데 어지러워서 걸을 수가 없었다. 휴대폰이 있는데 전화도 못 걸 정도여서 역무원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했다. 구급대원이 와서 나를 들 것에 싣고 역을 빠져나가는데 그때쯤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구급차에 탔을 때는 이미 꽤 멀쩡해졌고 응급실에 들어설 때는 출근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학병원 응급실 커튼에는 간밤에 어떤 환자가 다녀갔는지 피가 튀어 있었다. 양 옆 침대에서는 사람들이 연신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기에 이불도 없이 가만히 누워서 나 지금 너무 멀쩡한데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분명히 아까 역에서는 옴짝달싹을 못했는데, 병원 와서 이렇게 멀쩡하기 있기냐.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정신병이 다른 신체질병과 다른 점이 그것이다. 아주 잠깐 사이에도 곧 죽을 사람이었다가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


다들 정신병에 대해서 모르고 평생 살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간혹 나는 평소에 연락이 잘 오지 않던 사람들의 방문이나 만남 요청을 받곤 했다. 웬일로 나를 보자고 했을까, 웬일로 나를 찾아온다는 걸까. 그들은 만나서 나에게 각자의 마음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사람은 공황장애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불안장애이기도 했다. 상황도 증상도 사람마다 달랐다.


회사에도 많았다. 새로운 모임에서 만난 사람과 차를 마시다 듣기도 하고, 퇴사 면담에서 듣기도 했다.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 또 약을 먹으면 반대방향으로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몸. 호르몬 파티 속에서 작아지는 자아를 붙잡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짧은 시간에도 많은 공감대를 만들 수 있었다.


요즘에는 공황장애를 갖고 있다고 하면 심심찮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당신처럼 밝고 명랑한 사람들이 의외로 공황장애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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