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가면 혼잣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우려와 달리 내가 갔던 대학병원의 복도에는 그런 사람은 없었다. 진료실 앞에 긴 의자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이든 아주머니도 계시고, 나처럼 젊은 사람도 있고, 양복을 반듯하게 입은 아저씨들도 있었다. 다들 그저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병원에 간 사람 치고 나는 경증의 공황장애 환자였을 것이다. 의사는 공황장애는 인지치료가 효과가 좋다고 말했으나 그 치료를 권하지는 않았다. 의사가 있는 안전한 상황에서 환자를 의자에 앉히고 뱅글뱅글 돌린 뒤 빨대로 숨을 쉬게 하는 등의 방식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불안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경험을 시켜주면 실제 상황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치료는 받지 않고 안정제와 공황장애 치료제를 한 다발 받아서 병원을 나섰다.
문제는 복용량을 늘리고 나서 시작되었다. 하루에 치료제 두 알을 먹기 시작하자 졸음이 쏟아졌다. 푹자고 출근했는데도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졸았다. 졸다보면 점심시간이었다.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도 당장 이 길바닥에 누워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해도 의욕이 없었다. 아픈 병아리처럼 졸다가 슬그머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조는 건 내가 게을러서 그런게 아니라 약 때문인데. 누가 졸고 있는 나를 보면 월급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억울했다.
의사의 상담 없이 복용량을 한 알로 줄였다. 나중에 불안장애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약의 종류를 바꿔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자기랑 잘 맞는 약은 좀 덜 졸릴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과 약을 종류별로 먹어봤다는 지인은 뭘 먹든 다 졸리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중추신경계 약물이라는 건 매카니즘이 똑같아. 교감신경 활성화를 막아서 안정된 상태를 유지시키는 거지.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하게 만들어놓는 게 치료의 시작이라니까.
동네 정신과를 갔다는 친구는 상담을 함께 받는다고 했다. 대학병원은 상담을 받아봐라 이런 말도 없이 약주고 끝인데, 작은 병원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대로 동네 병원에 갔다가 나이든 의사 선생님이 교회 다니라고 권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진료 받다가 다시 패닉상태에 빠질 뻔 했다며 운전만 할 수 있었어도 그 병원 안가는건데, 하고 지인은 푸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