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에는 병원 방문과 동시에 입원을 했던 사람도 있었다. 나처럼 폐쇄공포와 광장공포를 동반하는 경우 대개 특정 요건들이 맞아 떨어질 때만 불안을 느낀다. 밀폐된 작은 공간에 있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있을 때. 그나마 약간 운이 좋은 편일 수도 있다. 만성 공황장애인 사람들은 대체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어디에서나 쉽게 정신을 잃는다.
공황장애로 정신을 잃게 되는 건 과호흡을 하기 때문이다. 공황발작이 오면 숨을 내쉬지 못하고 들이마시기만 하기 때문에 몸이 산소과잉상태가 된다. 그래서 공황발작의 마무리는 기절이다. 의식을 잃은 사람은 다시 숨을 내쉰다. 몸이 스스로 의식을 끊어 산소 과잉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흔히 숨을 내쉬지 못하는 사람에게 종이봉투나 비닐봉지를 대주라고 하는데 공황발작 시에는 별로 도움이 안될 것이다. 안 그래도 산소가 없는 것 같은 갑갑함으로 공포를 느끼는 사람 입에 봉투를 대다니. 더 발작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는 나에게 기절하거나, 혹은 손발이 꼬이는 정도가 가장 심한 발작일거라고 알려주었다. 만성 공황장애를 달고 사는 지인도 나에게 여러 차례 그 말을 강조했다. 공황장애로는 절대 죽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리 심한 발작도 30분을 넘기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발작이 찾아올까봐 걱정하는 나에 비해 자주 발작을 겪는 그는 담대했다. 공황발작으로는 죽지 않지만 뇌진탕으로는 죽을 수 있다며 패닉이 오면 꼭 자리에 앉거나 누워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리 쪽 팔리더라도 사람들 신경쓰지말고 그냥 일단 바닥에 앉아요. 그말을 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이 사람은 참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자주 겪는 사람은 그것을 견디는 굳은 살을 만들어 낸다.
밖에서 회식이라도 하고 들어갈 때면 지하철을 잘 타지 못했다. 술 때문에 두근두근한 탓에 쉽게 불안이 찾아왔다. 열차 문이 닫히는 순간 갇힌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문이 닫히기 전에 열차에서 뛰어 내리기 일쑤였다. 십오분에 한 번씩 오는 열차를 두 번쯤 보내고 나면 눈물이 나왔다. 다큰 여자애가 밤늦게 공공장소에서 우는 게 부끄러워서 나오는 눈물을 재빨리 훔쳤다. 그리고 짐짓 멀쩡한 사람인양, 멀쩡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불안이 찾아올 때 어디 한 군데쯤 전화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열차를 딸 때는 내 상태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곤했다. 이제 괜찮아서 전화를 끊어도 될 것 같다고 하면, 언제든지 또 불안하면 전화하라는 따듯한 말이 돌아왔다. 그 시간을 함께 견뎌준 사람들이 있어서 불행하지 않았다. 나도 언제고 나와 비슷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줘야지, 그런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