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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o not panic

09. 정신병자와 일반인

by Lucie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듣기 싫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이런 정신병자들 다 격리시켜야 돼. 얼마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였다는 기사를 보고 누군가가 한 말이다.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정신병이 있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일반적인 사람이 하기 힘든 흉악한 일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비난할 수는 있다. 그래도 저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정신병을 앓은 사람으로서 서글픈 마음이 든다.


예전에 강남역 화장실 살인 때도 그랬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불러온 처참한 일이었다. 나는 친오빠에게 여성 혐오가 위험한 행동을 야기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빠는 정상적인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살인범이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오빠가 그렇게 말하자 더 화가 났었다. 네 동생인 나도 정신병자고 정상 아닌 사람 세상에 많아. 정상인 사람은 다 멀쩡하니까 정신병자는 빼고 이야기하자,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나도 어느 날 지하철에서 쓰러지기 전까지, 쓰러지던 순간의 1초 전까지 정상인이었다. 그리고 쓰러진 순간부터 정신병자가 되었다. 정신병자는 감기 걸린 사람과 같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감기 걸린 사람을 비정상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 정신병자의 반대말로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공황장애 진단을 받기 전에 많은 질문에 응답했다. 질문은 종이에 적혀있는 것도 있고 의사가 직접 물어보는 것도 있다. 그중에 무척 공감되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패닉이 왔을 때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순간적으로 그 공간을 탈출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생겼던 것이 기억났다. 지하철 문을 보는 순간 창문을 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내가 정말로 창문을 깼다면 나는 한 번에 내과가 아니라 정신과를 찾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나보다 남들이 먼저 내가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까.


내가 만약에 거기서 창문을 깨려고 했다면 사람들이 내가 1분 전까지 정상인이었다는 걸 알았을까. 날 때부터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간혹 지하철을 탈 때 노약자 석의 그림을 가만히 본다. 거기에는 지팡이를 짚은 사람도 있고, 배가 나온 사람도 있고, 어린이도 있다. 하지만 공황장애 환자를 의미하는 그림은 없다. 공황장애 환자는 패닉이 오면 기절한다. 쓰러질 때 뇌진탕으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머리를 낮은 곳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자리를 양보받을 필요가 있다. 공황장애 환자에게도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공황장애 표시를 달고 지하철을 탈 것이다.


누구나 공황상태를 겪을 수 있다. '장애'라는 말이 붙을 때는 그것이 일상생활에 저해가 될 만큼의 방해를 줄 때이다. 우리는 신체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블록의 돌기를 통해 건널목임을 알고, 휠체어를 탄 사람은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를 통해 움직인다.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정신질병이 없는 사람들이 정신병자를 너무나 간단히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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