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너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도와줬어." 엄마는 지하철에서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을 도와준 이야기를 종종한다.
"저 회사 사람들 다 있는데서 별 것도 아닌 일로 대성통곡을 했어요." 후배는 멋쩍게 웃으면서 최근 평소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차에서 자꾸 공황이 와서 운전을 할 수가 없어. 병원 가야 하는데 운전도 못하겠고 택시도 못 타겠다." 늘 센 척을 달고 사는 지인의 힘없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지인과 후배, 그리고 지하철 속 모르는 행인에게서 나를 본다. 그들은 무엇에게 쫓겨 자신을 구석진 자리에 놓아두었을까. 나는 남들이 보기에도 멋있고 괜찮은 나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허름하게 대접했다. 아파도 쉬지 않았고 슬퍼도 남들 앞에서는 웃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을 때면 진짜 내 기분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대학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학교 선배들과 술을 마셨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술을 마시려니 긴장해서 소주를 세 병 가까이 마시고도 멀쩡했다. 그때 나는 내 주량이 소주 세 병인 줄 알았다. 어디 가서 소주 세 병이 주량이라고 말하고 꽤 거침없이 술잔을 들었다. 당연히 소주 세 병이 주량일리 없었고, 술로 인한 흑역사도 몇 번 생겼다. 지금 내 주량을 묻는다면? 세 잔이다. 무슨 술이든 세 잔을 넘기면 취하고 속도 불편하다.
지금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 또 내가 나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지 않나, 가끔씩 마음의 소리를 들어본다. 공황장애 진단 이후에 일기를 참 많이 썼다. 일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내가'와 '나는'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일, 잘하는 것. 그런 것들을 쓰면서 몇 년을 보냈다. 그렇게 나에 대한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니 자연스럽게 왜 공황장애에 걸렸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실 공황장애에 대해 잘 모른다. 나보다 훨씬 심한 공황장애를 앓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의사도 아니다. 내가 뭘 안다고 공황장애에 대해서 쓸 수 있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공황장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나 같이 자신을 홀대하는 바보가 세상에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쓰게 되었다. 혹시나 공황장애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또 나처럼 스스로를 돌보지 않다 기절하게 되는 일이 생길까 봐.
요즘 운동이나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다. 더 매력적인 몸과 탄력 있는 피부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를 찾아낸다. 넘치는 다이어트와 화장품 광고를 보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보여지는 나'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날씬한 것보다 건강한 것이 더 중요한데. 공황장애가 올 때쯤 이유 없이 몸무게가 빠졌던 것을 돌이켜보며 약간 씁쓸하다. 못난 나를 감추기 위해서 화장하고, 날씬해 보이기 위해서 압박이 심한 옷을 입는 것. 그것의 연장선에 나의 부족한 성격을 감추고, 못하는 일을 감추고, 하는 일들이 있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지 않아 보이는 나의 특성들을 깊은 지하실에 가두는 일. 그런 일들을 사람들이 너무 많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까. 그리고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렇게 애써 완벽한 척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지금 얼마나 잘하고 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직장 생활은 십 년 가까이했는데도 늘 새롭고, 하는 일이 전도유망하지도 않다. 불평하면서도 너무 그러면 안되는데 싶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믿는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인내가 있고 해로운 인내가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을 많이 알았고 그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나를 많이 알게 되자 무조건 남의 조언에 의지하지 않고 나의 결정을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공황장애라는 수업료를 내고 꽤 괜찮은 걸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