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시 1일기, 첫번째 친퀘테레
1
로마 공항을 두 번째로 통과하면서 기억 속의 많은 이미지들이 왜곡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기억보다 공항이 깨끗하고 컸다. 내가 맨처음 로마에 왔을 때 기대했던 게 컸었던가 보다. 작고 시끄럽고 조악한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와 달리 쾌적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기차를 타러 몇 층으로 어떻게 이동했었는지도 기억이 났다. 그런데 진짜로 기억이 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익숙한 느낌인지 영 확실치 않다. 기억이란 이런 것이다. 실존하지 않는 것, 확인할 수 없는 것, 그래서 확실하지 않은채로 남아있는 것.
2
친퀘테레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비가 많이 왔고 캐리어는 무거웠다. 하드캐리어는 물에 젖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친퀘테레는 제주도 같은 곳이었다. 올레길처럼 트래킹 코스가 따로 있고 나이든 관광객들도 많았다. 나는 열차를 타고 다섯 개의 절벽마을을 돌았다. 넓은 평지를 다 놔두고 사람들은 왜 절벽에 집을 짓고 살았을까. 바다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 아름다운 광경,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희망. 이탈리아의 지중해는 건너편에 프랑스와 스페인, 아래로는 아프리카 대륙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가장 먼 마을인 몬테로소 해변에서 발을 담갔다. 물이 따듯했다. 대륙에 싸진 바다의 느낌이 났다.
3
마나롤라에서 인생 스파게티를 만났다. 보기엔 볼품없어 보였는데 풍미가 엄청나다. 맛의 핵심 요소는 면인 것 같았는데, 일반 스파게티 면이 생머리라면 그 면은 반곱슬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구불구불한 상태로 말려진 면인 것 같았다. 크게 말아올린 스파게티를 몇 번 입에 넣자 금방 식사가 끝났다. 저녁 9시였는데 식사가 끝나자 디저트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커피? 하고 물어서 괜찮다고 거절했다. 치워지고 있는 옆테이블에는 다마신 에스프레소 잔이 있었다. 저녁식사 후 에스프레소를 마시다니, 카페인도 많이 먹으면 내성이 생기는건가. 이탈리아인들의 커피 자부심은 대단한 것 같다. 사흘째 이탈리아에 있는데 스타벅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4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가 있는 리오마조레 한 바퀴를 돌았다. 오래 돌아보니 아름다운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어제는 몰랐던 친퀘테레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절벽은 세로로 퇴적된 바위들로 장엄하고, 높은 파도가 절벽을 쾅쾅 소리내서 때렸다. 물거품이 생크림처럼 희게 녹아내려와 바다를 하늘색으로 물들였다. 트래킹은 못하고 동네 계단만 빡시게 올랐는데, 트래킹도 역시 엄청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이 필요할 때 트래킹하러 오고 싶다. 제주 올레길과 협약을 맺었다던데, 올레길부터 가봐야지.
5
다시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손님 하나가 나가면서 챠오챠오, 하고 인사를 하자 계산대 앞에 줄서 있던 모두가 챠오챠오, 하고 맞인사를 해주었다. 이런 마을에 산다는 건 어떤 하루하루일까. 집앞부터 길이 모두 계단인 마을, 열차 없이 다른 마을로 가려면 산을 넘어야 하는, 절벽 작은 마을의 생활이 잠시 궁금해졌다.
6
잘 깎아 넣은 복숭아가 담긴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고 친퀘테레를 떠났다. 열차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약간 아쉬움이 남았지만, 역시 약간 아쉬운 게 제일 좋은 거 아닐까 하면서 떠났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열차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모두 여행이라는 점이다. 밥 먹는 것도, 돈 내고 화장실 쓰는 것도, 길을 헤매는 것도, 어느 외국인의 암내도 모두 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