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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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할 무렵 나는 인사팀에서 일하고 싶었다. 몇몇 회사는 인사 업무로 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많이 뽑는 직무로 지원을 했다. 인사 직무로 면접을 본 곳에서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영업으로 지원하지 않고 인사팀으로 지원을 했어요? 학교 다닐 때도 졸업하고 자동차를 팔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농담을 많이 들은 터였다. 누가 봐도 내가 뭔가를 파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영업 직무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뭔가를 직접 팔일은 없었다. 나는 온라인 광고 매출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기업문화팀을 뻔질나게 드나들어 내가 기업문화팀 소속인 줄 아는 동기들이 많았다. 나는 매출보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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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회사에 들어갈 때 나는 드디어 인사팀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인사팀 경력 없이 인사팀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그건 지금 돌이켜봐도 아주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무튼 그렇게 들어간 회사는 엄청나게 성장 중이어서 일이 많았다. 보통 퇴근시간은 밤 12시였다. 매일 자정에 택시를 타고 퇴근하다 보니 월간 택시비를 가장 많이 쓰는 구성원이 바로 나였다. 그렇게 일이 많으면 회사 다니기가 참 고되고 힘들었을 것 같지만, 아침에 출근을 하는 일이 즐거웠다. 처음으로 회사 가는 일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회사가 지금의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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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합리적인 의견 개진이라면 어떤 것이든 허용했다. 입사를 해보니 우리 팀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가치가 적혀있었다. 신규 입사자라 텐션이 넘쳤던 나는, 회사와 조직이 강조하는 가치를 모두 철저하게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많아서 그 모든 것을 다 철저하게 추구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리더에게 회사에서 강조하는 가치와 우리 팀 주요 가치 중에 어떤 것이 더 우선인지를 물었다. 리더는 내 물음에 당황했다. 팀원 모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잠시 고민하던 리더는 회사 주요 가치가 더 우선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추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리더는 내 의견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일대일 미팅에서 그 질문을 해준 것에 대해 칭찬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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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보는 일들도 많았다. 명절 선물을 반송하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반송하며 동봉할 편지글을 쓰게 되었다. 선물을 돌려받은 사람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반송의 취지와 명절 인사를 담아 글을 써서 올려두고 퇴근을 했다. 다음날 내 글에는 피드백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이런 문구를 같이 넣으면 어떨까요? 하며 어떤 이는 자기가 쓴 문구를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그 댓글을 적어준 사람 중에는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고객 서비스 부서에 계신 분도 있었다. 나는 그 의견들을 반영해서 빠르게 더 좋은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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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은 바로 묻고, 다른 의견이 있을 때 바로 말할 수 있는 것.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더라도 개인적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는 상황.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더 좋은 의견이 있으면 누구나 댓글을 달아줄 수 있는 환경. 나는 의견의 교환이 자유로운 곳에서 심적 자유를 얻었고 이전과 전혀 다른 회사 생활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직책이 높은 리더에게 거침없이 반대의견을 댓글로 달았다가 더 거친 반박을 받기도 하고, 여러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그런 에피소드도 역시 우리 회사라서 가능한 일들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소중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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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이 탁월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최고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일했던 분들과 지금은 같이 일하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일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일하는 문화도 약간 달라졌고, 조직 구성도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좌절도 겪었다. 콱 넘어져 한동안 다리를 못 썼지만, 이제는 잘 걷고 곧 잘 뛰기도 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다. 이제 이런 경험들을 어떻게 더 값지게 써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