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름엔 어떤 뜻이 있나요?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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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은혜와 물이라는 의미의 한자어로 되어있다. 친가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들에게는 모두 '은'자를 돌려쓰게 하고 있었다. 엄마는 은혜가 강처럼 넘치는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다. 은자 돌림이라서 갖다 쓴 거니까 구색을 맞춘 설명이 아닐까 생각했다.


2

이름이 유명 아나운서와 비슷해서 어린 시절 이름을 말하면 열에 아홉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정확하게 마지막 글자를 발음해도, 다들 이름란에 정은아라고 적었다. '하'에요 '하', 라는 말을 살면서 오 백번은 하지 않았을까. 고삼 때는 우리 반에 정은아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어서 나란한 출석 번호로 불렸다. 둘의 이름이 너무 비슷한 탓에, 한 명을 부르면 두 명이 고개를 돌려 돌아보곤 했다. 그 덕에 고삼 때 친했던 친구는 서른이 넘어서도 내 이름을 정확하게 은'하'야,라고 발음해서 불러준다.


3

첫 직장에 입사할 때쯤 국내 스마트폰이 출시되었는데 그 폰 이름이 갤럭시였다. 그즈음 회사 사람들은 나를 갤럭시라고 불러주기도 했다. 별들의 무리라는 의미의 은하는 내 이름과 한문은 다르다. 하지만 나는 갤럭시라고 불리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불릴 때 반짝반짝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시절을 돌이켜 보니 회사에서도 superstar라는 메일 주소를 썼었다. 회사의 슈퍼스타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이었겠지. 누가 봐도 그런 의미의 이메일 계정이다. 솔직한 욕망의 신입사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뻔히 다 드러나서 웃기는 애였을 것 같다.


4

지금 회사에서 루시라는 영어 이름을 쓴지도 벌써 8년이 되어간다. 이제 주변에는 나를 은하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반, 루시라고 부르는 사람 반이다. 이름을 정할 때 영어 이름의 의미를 찾아봤는데 루시는 빛이라는 뜻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름대로 빛과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밝은 편이긴 했을거다. 나는 수다스럽고 잘 웃으니까. 언젠가는 글 쓸 때 사용할 이름을 짓고 싶다. 루시가 밝은 나를 표현해 주었다면, 다음에 정해질 이름도 나의 특징을 말해주는 이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5

부모님이 이름 대충 지은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름을 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필명만 고민해봐도 알 수 있다. 나를 부르는 이름은 곧 내가 되었다. 그 이름이 예쁘든 그렇지 않든, 어떤 의미를 가졌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은하와 갤럭시, 루시와 알 수 없는 필명 그 모든 이름들이 곧 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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