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day-19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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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단짝, 남편. 매일 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지만 볼 때마다 반갑고 귀여운 사람이다.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말하면 오랜 친구들은 다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싸움을 참아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거지. 나는 남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간혹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남편은 그런 나의 감정 지뢰밭을 세심하게 돌봐주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았는데, 이런 사람을 만났다면 다시 신에게 감사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재택근무가 통 안맞지만, 남편과 더 많이 붙어있을 수 있다는 점은 좋다.


2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비밀의 숲>. 시즌 1보다 재미는 덜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상식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어릴 때 아빠가 제5공화국 같이 아저씨들만 우르르 나오는 드라마를 볼 때, 왜 저런 재미없는 걸 볼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되었다. 매회 보면서 이 드라마엔 흔한 키스신 하나 나오지 않는군!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거 없어도 열심히 챙겨서 보고 있다. 황시목 검사의 사회성 떨어지는 대사를 따라 해 보는 것도 빅재미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윗사람한테 말해볼 수 있을까, 하고 허무맹랑한 상상도 해보면서.


3

일요일에 들으러 가는 코딩 수업. 코로나 때문에 밀리고 밀리다 지난주에 시작했다. 처음 남편이 앱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을 때가 벌써 삼 년 전이다. 그때는 1 대 1 과외였기 때문에 모를 때 곤란한 눈빛만 보내도 남편이 알아서 착착 도와주곤 했다. 코딩 공부라기 보단 코딩 구경에 가까웠달까. 그렇게 서당개로 삼 년을 지냈더니 이제야 아주 조금 까막눈을 면했다. 그래도 코딩은 항상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과생을 대상으로 가르쳐주는 곳을 가니 내 수준에 딱 맞다. 수준에 딱 맞으니 수업이 재미있다. 학습은 본능적으로 즐거운 활동이라는 걸 새삼 기억해 낸다. 재미가 없었다면 학습 설계가 잘못된 거지. 배우는 건 원래 재밌다.


4

가을. 매일 보고 항상 봐도 반가운 남편처럼, 가을 하늘이 그렇다. 아침마다 하늘을 보면서 감탄을 한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 덕분에 조금은 가뿐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가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서 그런 걸까, 자연 그 자체가 주는 힐링이 참 크다. 이번 연휴에는 그런 가을을 좀 더 느끼기 위해서 발품을 팔아볼 예정이다. 작은 나들이 계획에도 여러 가지 고려사항이 생각나 움츠러드는 시기이지만, 안전하게 바람 쐬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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