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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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안 가도 되는 신나는 날이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 댁에 주로 가곤 했는데, 그런 일로 엄마 아빠가 자주 다퉜던 기억이다. 도대체 추석 연휴 전날까지도 할머니 댁에 가는지 마는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럴 때면 부모님이 또 싸울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2
친척들이 다 모여 차례 음식을 만들고 절하던 일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나는 결혼을 해 내 가족이 생겼고, 더 이상 할머니 댁을 가지 않는다. 대신 친정과 시댁을 방문한다. 엄마 주려고 사둔 물건들을 챙기고 친정에서 엄마 밥을 먹는다. 아직도 초딩 같은 친오빠랑 입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이다. 우리 가족은 다 말이 많아서 티비를 안 켜도 오디오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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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방문은 1박이지만 시댁 방문은 당일치기다. 차로 30분 거리라 굳이 자고 올 필요가 없어서다. 그렇게 가까운데도 일 년에 서너 번만 간다. 하는 짓이 그리 예쁘진 않을 텐데 시부모님은 늘 오냐오냐 해주신다. 시댁에 가는 일이 싫지 않은 며느리 생활이라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시댁은 다들 조용하다. 빈 오디오는 텔레비전이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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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통 시작은 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두 패의 부녀자가 삼을 짓는 경쟁을 해서 음력 8월 15일에 결과에 따라 진팀이 이긴 팀에 음식을 한 턱 내는 날이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도 추수 전에 미리 곡식을 따 풍년을 기원하던 날이라고 한다. 조상에 제를 지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추수까지 농작물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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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떨까. 농사를 짓는 집안이 아니라면 가족이 함께 얼굴을 보는 것이 추석의 중요한 기능이 아닐까. 그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추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보고 싶던 가족들이라고 해서, 내 귀에 사탕 같은 소리만 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평소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면 사람 마음에 대못 박는 말은 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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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석 연휴 앞에 이틀 휴가를 냈다. 분주했던 일상에 쉼표를 찍는 주간으로 삼기로 했다. 원래 시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했었는데, 코로나라 어지간하면 모이지 말자는 아버님 의견에 따라 일정이 취소되었다. 집 청소 미션이 사라져서 바람이나 좀 쐬고 오기로 했다. 느슨하게 풀린 마음처럼 가족들을 더 넉넉하게 대해주는 명절이 되면 좋겠다.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처럼 깡총깡총한 연휴를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