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존경받는 어른은 어떤 어른인가요?

day-28

by Lucie

1

첫 직장에 다닐 때 아침마다 일찍 출근해서 그림을 그리는 차장님이 있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는데 노트와 펜을 들고 계시길래 어디 다녀오시냐고 물었다. '그림을 백 시간 그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저 자신에게 실험하는 중이에요.'라고 차장님은 대답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그림을 그리고 계신 것이었다. 그렇게 틈틈이 그림을 그리던 차장님은 그림 그리는 법에 대한 책을 내고, 생각을 그림으로 정리하는 법을 가르쳤으며, 책에 삽화도 그리는 분이 되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그렇게 얻은 능력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그런 일을 '즐겁게' 해 나가셨다는 점이다.


2

나는 삶이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삶이 괴로울 때도 얼마나 많은가. 불합리를 보고도 참아야 할 때, 억울한 오해를 샀을 때, 맛있는 걸 보고도 소화가 안돼서 먹을 수 없을 때, 세시쯤 마신 커피 때문에 잠이 안 와 밤을 새우게 될 때. 나는 잘 웃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소릴 듣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고 찡그리고 있을 때도 많다. 친한 사람들에게 최근 겪고 있는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차장님의 늘 싱글벙글한 얼굴이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일상적으로 항상 충만한 얼굴이신 거지, 저분은 지상계의 인간이 아닌 것 같아,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3

별 볼일 없는 나에게도 좋은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해주셨는지 모른다.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그런 칭찬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오래전 차장님이 나에게 해주신 칭찬을 가장 자주 열어보는 마음속 서랍에 넣어두었다. 칭찬연구소 같은 곳이 있다면 차장님의 칭찬을 가져다가 표본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때 이후로 나도 진심이 담긴 칭찬을 자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게 되었다. 어떤 말 한마디는 다른 사람에게 아주 오래도록 간직되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경험이었다.


4

어릴 적 읽은 수많은 위인전보다 차장님의 존재가 훨씬 강력했던 이유는, 내가 그런 삶을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충만한 삶.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직업이 되기도 하는 삶. 나는 때때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뭔가를 선택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없어서 취업이 잘되는 경영학을 선택한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정하고 그 결과대로 삶을 살아가면 거기에 내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누리며 살아가는 게 내가 바라는 삶이라는 걸, 차장님을 보면서 알게 된다.


5

어른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자아가 있는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나도 아직 꼬꼬맹이라서 멀었지만 언젠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다. 나이는 성인이 된지도 한참이나 지났지만,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은 아직도 참 멀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보름달이 되어 지구인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