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2
1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도시는 베를린이다. 나는 일 년 전 베를린에서 두 달을 머물렀다. 몇 달 전부터 독일 부동산 사이트를 번역기 돌려가며 본 끝에 우리는 샬로텐부르크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친구가 허위 매물이 아닌지 직접 발품 팔아 확인을 해주었고, 남편의 재직 증명서와 소득증명서를 영어로 다 떼어 보낸 끝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창틀이 나무로 되어있는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넓고 깨끗한 집이었다. 건물에서 만난 사람들은 안면이 있건 없건 무조건 인사를 건네는 게 약속이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챠오, 인사를 하고 지냈다.
2
베를린은 음식이 맛있는 도시였다. 친구는 공항까지 마중 나와 우리를 데리고 베를린 유명 중식당에 데려갔다. 맛있고 저렴했을뿐더러 중국집에서 맛있는 독일 생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이렇게 완벽할 데가. 베를린에는 베트남 식당들이 굉장히 많은 데 가서 먹어보면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베트남에서 넘어온 난민을 독일에서 많이 받아주었다고 하는데 덕분에 베트남 현지 맛을 베를린에서 만날 수 있다. 손님이 많아서 합석을 종종 했는데 옆에 앉은 어린이가 당신들은 아시아 사람인데 왜 여기 와서 아시아 음식을 먹는지 물어봤다. 베트남 음식은 한국보다 여기가 훨씬 맛있거든, 하고 대답해주었다.
3
베를린 생활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로 패션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옷들은 보자마자 빵 터진 적도 있었다. 신기한 옷들을 구경하면서 패션의 다양함에 눈을 떴다. 내가 걸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것을 걸쳐도 거기서는 전혀 튀지 않았다. 나는 커다란 레몬이 그려진 점프 수트를 입을 때 가장 신이 났다. 가슴의 절반이 훤히 드러나는 옷이었지만 내 몸매가 어떤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건 나에게 이런 자유를 주는구나, 절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무늬를 등에 그리고 등이 훤히 드러나는 바다색 원피스를 입고 다니고 싶다.
4
귀호강할 수 있던 도시였다. 베를린에서는 여름에 발트뷔네라고 커다란 숲 속 공원에서 공연을 한다. 작년엔 운 좋게 베를린필이 나와서 숲 속 야외 공연장에서 베를린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본 베를린필 공연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클래식은 듣는 것보다 봐야 제맛인가 보다. 현을 긋는 분주한 활, 동시에 앞뒤로 움직이는 트럼페터들의 팔, 갑자기 천둥처럼 내리 꽂히는 북소리. 소리와 연주자들의 액션이 만들어내는 기승전결을 즐기다 보니 공연이 끝났다.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머무는 동안 공연이 없는지 알아봤는데, 마침 조지 벤슨이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지 벤슨이 라이브로 쳐주는 기타 소리를 듣는데 팔에 소름이 돋았다. 한국에서 가끔 조지 벤슨 노래를 다시 들을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5
거기서 놀았다. 두 달 동안 회사를 안 다녔다. 일한 지 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베를린이어서가 아니라 놀아서 좋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도시에서 놀면 구경할 것도 많고, 새로 보는 것도 많고, 그만큼 새로 얻는 영감도 많다. 힙의 대명사인 베를린에서 놀면 그래서 짱 좋다. 힙한 거 잔뜩 보고, 맛있는 맥주 먹으며 흥청망청 거리다가, 전쟁의 흔적이 사방에 널린 곳이라 갑자기 시무룩해질 수도 있다. 거기 있는 동안 상념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가지 뜬구름 같은 생각들을 많이 했다. 대부분 쓸데없는 생각이었겠지만, 살면서 쓸모 있는 생각만 할 수는 없으니까,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거기서 온전한 쉼을 경험한 것 같다. 왜냐면 그 여행 이후로 십 년에 한 번은 꼭 이렇게 쉬어야지, 하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음번 쉼표를 찍을 땐 어디를 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즐겁다. 나는 사랑하는 베를린을 통해서 또 다른 도시를 사랑할 준비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