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쌍둥이라면, 어떤 내가 존재하길 바라나요?

day-34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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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하기 싫은 일이 있다. 그럴 때면 내가 한 명 더 있어서 내가 할 일을 대신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다. 그 한 명한테 내가 하기 싫은 일 대신시키고 나는 놀아야지. 잠깐, 그럼 월급도 둘이 나눠 써야 하잖아? 게다가 나랑 똑같은 한 명이라면 분명히 고분고분할 리가 없다. 게다가 난 좀 꼰대인데, 꼰대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꼰대임. 그렇다면 나는 나의 분신과 사이좋게 지낼 수가 없겠군. 그런 생각 끝에 분신은 없는 편이 낫겠다고 결론 내린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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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와 비슷한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가 남자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최근 읽었던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왔다. 회사에서 여성이 화를 내면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남성이 화를 내면 추진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승진의 기회에 자신이 능력이 되는 사람인가 검증하며 주저하는데 반해 남성은 대체로 적은 가능성만 있어도 기회에 도전하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내 자식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자식이 남자아이일 때 더 잦다고 한다. 그런 내용을 한참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남자로 살았다면 같은 세상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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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동생의 이야기도 계속 생각나곤 한다. 친구의 동생은 성인이 된 이후에 이름을 바꿨는데, 누가 들어도 남자라고 여길만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을 바꾼 뒤 일할 때 편리한 경우가 많아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대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하는데, 전화통화를 하기 전까지는 그를 남자로 여긴다고 한다. 남자로 여겨지면서 일하는 건 어떤 경험일까,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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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똑같은 남자라면 상당히 수다스러운 축일 것이다. 서열에서 무조건 이기는 쪽이 되려고 하거나, 아니면 서열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사회를 아예 탈출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공황장애를 앓았다면 남자인 쪽이 더 힘들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걸 쉽게 요구받는 분위기 속에서 나약한 사람으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성차별은 여성만 고통이 아니라 남성 집단에게도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약한 집단을 열등하게 취급하는 패러다임은 모든 곳에서 동작한다. 성차별이 있다는 것은 남성 집단 내에서도 동질 집단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의미한다. 술을 못 마신다거나, 힘이 약하다거나, 섬세한 성격이나 외모를 가졌다는 것도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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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여기까지 오니까 굳이 남자인 쌍둥이가 있을 필요도 없겠다 싶다. 상대적으로 덜 불공평하다고는 하나, 그 집단이라고 해서 다 천국이겠는가. 우리 가족은 지금도 만나면 서로 말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거기에 한 명 분의 오디오를 더 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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