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인정받았던 순간

day-46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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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하고 열 달쯤 회사를 다닌 시점이었다. 옮긴 회사가 잘 맞지 않아서 한 달에 사나흘쯤은 밤에 울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던 친구가 곧 자기 회사 인사팀에서 사람을 뽑을 것 같다고 알려왔다. 인사팀 경력이 없어도 뽑는 것 같다는 말에 그날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경력을 정리하고 왜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자기소개서를 썼다. 꼭 들어가고 싶어서 글솜씨 좋은 친구에게 첨삭도 받았다. 그렇게 이력서가 거의 완성될 무렵 정말로 공고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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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한 마음이 통했던지 합격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일을 하다가, 나를 뽑는 공고와 관련된 정보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1번으로 서류를 제출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지원서에 대해 리더는 클래스가 다르다는 평을 남겼다. 그 말이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인사팀 경력이 없어도 잘할 수 있다고, 나를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썼어도 읽는 사람이 대충 읽으면 안 보이지 않았을까. 나를 알아봐 준 리더에게 새삼 고마웠다.


3

인사팀에 들어오면 좋은 점이 매주 새로운 입사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면접 합격 사실을 알리고 현재 처우를 메일로 받았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 회사에 제출한 정보와 면접 과정에서 발생한 정보를 모아서 연봉을 산정한다. 그 과정에서 입사예정자와 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입사를 확정한 뒤 한 달 정도 기다리면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나게 된다.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나의 과도한 텐션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 반가움을 슬쩍 감추면서 신규 입사자 온보딩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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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일은 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을 할 때는 리더에게 인정을 많이 받았다. 반대로 재미없는 일을 할 때는 결과가 형편없을 때도 있었다. 리더는 나에게 관심 있는 일을 할 때와 관심 없는 일을 할 때 퍼포먼스 차이가 심하게 난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프로는 입금되었을 때 일하는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나는 그런 인물은 못 되는 모양이다. 진심으로 공감을 못하면 미션 자체에 집중하지 못했다. 기한은 맞췄지만 퀄리티는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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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남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일이다. 사실 나는 모든 일을 다 잘하고 싶다. 내키지 않는 일이더라도 멋있게 해서 내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속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내뱉었는데, 이제는 나의 그 말이 조금 속상하다. 나는 왜 나에게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걸까. 왜 내가 더 잘할 거라고 기대하지 못하는 걸까. 늘 나의 가능성을 낮잡고 있다가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 나와 그럴 줄 알았다고 미운 말을 하는 나를 혼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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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정의 순간들은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게 해주는 좋은 자양분이 된다. 그런 말들 덕분에 나는 내가 잘하는 걸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인정의 순간을 적으라고 하니, 왜인지 부정적 피드백들도 같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더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나 보다. 앞으로 더 많은 인정의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갈 길이 멀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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